교토역에 도착한 것은 새벽 6시 20분 전이었다. 히로시마에서는 일단 가방을 코인라커에 넣고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갔었지만, 이미 묵을 곳으로 점찍어둔 타니하우스(외국인용 게스트하우스. 싸다는 것이 유일무이한 장점...이려나?)는 아마 8, 9시면 받아주지 싶었다. 그러니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두리번거리다보니 맥도날드가 6시부터 영엽을 한댄다. 역시 신칸센부터 각종 열차가 다 오는 역이다보니 우리 말고도 꽤 여러 명이 맥도날드 앞에 진을 치고 6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잠을 제대로 못자서 피곤하고 머리가 멍했다. 아침 세트를 주문해서 먹고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얼마나 보냈더라? 바로 뜨려고 해도 관광안내소고 버스센터고 문을 안 열었으니 뭐, 그 다음엔 약 2시간에 걸쳐 교토역 대탐험이었다. 워낙 넓고 복잡한 역이라 시간은 잘 갔던 것 같다.
교토역 지하에 있는 '불새' 시계. 교토역에는 데즈카 오사무 기념관이 있다. 물론 아직 문을 연 시각은 아니었지만... 정문을 나서면 밀림의 왕자 레오 상도 보인다. 아톰도 어디서 봤던 것 같고.
겨우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가게 문들이 열릴 시간까지 버텨서, 버스 센터에서 1일카드를 사가지고 타니 하우스로 향했다. 부슬비가 내려 진흙길이 되는 바람에 낑낑거리며 가방을 들고 타니하우스에 도착한 시간이 8시 40분. 예전 기억에 아침에나 밤에나 체크인 가능했던 것 같아서 무작정 갔는데, 다행히 내 기억대로였다 ;_; 바로 2층에 있는 작은 방으로 체크인하고 5일치 숙박비를 선불... 장거리 이동 때문에 생각보다 돈을 많이 써서 남은 돈이 빠듯했다. 빠듯하대봐야 선물은 못사겠다 정도였지만, 역시 여행가서 돈이 넉넉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 onz 돈을 어디서 뽑아야 하나 궁리하며 일단은 아껴 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기분만 그랬다 뿐이지 행동 패턴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 다음엔, 씻고 널부러져서 겐마이차와 과자를 먹으며(차와 과자는 무료로 얼마든지!) 뒹굴뒹굴. 비가 제법 내려니 어찌나 움직이기 싫은지. 비가 오면 제일 큰 문제는 언제나 신발이다. 여름이라면 스포츠샌들을 신으니 별 상관이 없지만, 운동화가 젖어버리면 낭패라... 어쨌거나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는 것 같아서 12시쯤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우산은 아주머니에게 빌릴 수 있었다.
남은 시간도 많지 않고, 날씨도 그렇고 해서 잡은 이날의 목적지는 교토 시내에서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세 곳 중 료안지와 기요미즈데라 두 곳.
료안지(龍安寺)는 교토 서북부에 있다. 금각사, 은각사, 청수사 못지않게 손꼽히는 관광지지만, 굳이 따지자면 중심가에서 좀 벗어난 셈인데다 왕래하는 버스도 많지 않아 자유여행객만 찾을 뿐 단체관광객은 잘 없다. 덕분에 교토가 아무리 전보다 사람이 많고 정신없는 도시가 되었다 해도 료안지는 예전 그모습 그대로였다. E양과 나, 둘 다 같은 의견이었지만 처음 교토에 갔을 때도 료안지가 최고였고, 이번에 다시 찾은 곳들 중에서도 료안지가 최고였다 ㅠ_ㅠ
입구에 들어설 때쯤엔 다행히 빗줄기도 잦아들고... 운치있는 계단을 올려다보자 "교토에 다시 왔다"는 실감이 확 밀려들었다.
계단 위에 료안지 본당이 보인다.
바깥 정원. 꽃이 피었거나, 잎이 푸르렀거나, 단풍이 들었거나, 눈이 쌓였다면 물론 더 절경이었겠지만... 겨울비 내린 뒤의 한적한 정원도 좋다.
예전에도 찍었었지만, 가레산스이 정원. 이번엔 여러 각도에서 보면서 돌이 열다섯개임을 확인했다. 바깥도 좋지만 이 정원도 좋다.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시간이 간다. 여름에는 시원해서 더 좋았지만 ^^; (겨울엔 좀 춥다)
동전 모양의 츠쿠바이... 츠쿠바이 맞나? 그냥 샘인가?(...)
료안지 앞 상점에서 본 인형. 료안지 앞에는 기념품 가게나 음식점이 몇 개 없지만, 그래도 기웃거리며 걸을 만 하다.
료안지를 돌고 나니 또 출출해졌다. 위에 썼듯이 료안지 앞에는 음식점이 별로 없고, 또 그런 가게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다음 목적지인 청수사도 중심가에 가깝고 하니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 했으나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다. 일단 어딘가의 대학으로 간다는 버스를 탔다. 대학이라면 그 앞에 뭔가 괜찮은 데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내렸으나... 아무 정보도 없이 대뜸 뭘 찾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쩝. 돌아와서 듣자하니 교토대 앞이 산책하기도 좋고 싸고 맛있는 음식점도 많다던데, 그건 나중에 또 기회가 오지 않고선 이미 물 건너간 일.
그래서 다시 버스를 타고 중심가 - 가와라마치로 향했다.
일단 우린 4조(시조)에서 내렸지만, 뭔가 비싸지 않고 무난하게 먹을 만한 걸 찾으려니 결국 한 블록을 걸어서 3조(산조)까지 가야했다. 그래서 간 곳은 100엔 초밥집 - 이름하여 '갑빠 스시'. 일본 전설에 나오는 물귀신 캐릭터가 여기저기에...
나중에 또 갔을 때는 괜히 성게알 초밥을 시험해보는 바람에 쓴맛을 봤지만, (역시 성게알/연어알/고등어 초밥 같은 건 아무 데서나 시험해보지 말것! 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새우와 튀김 초밥류가 맛있다는 점은 보장할 수 있다. 튀김 맛이 괜찮은 것으로 보아 따로 파는 튀김우동도 괜찮을 듯. 먹어보진 않았지만 돈까스 초밥이나 스테이크 초밥도 있다.
꽤 늦게까지 영업을 하고(10시쯤?), 가격 대비 성능비가 좋아서 그런지 낮에는 손님이 많구나 정도였는데 저녁때는 줄서서 먹어야 한다. 그나저나 E양과 나는 합쳐서 일곱 접시 정도 먹고 배가 불렀는데 이쪽 저쪽에서 몸집도 엄청 작은 할머니들이 열 접시씩 먹는 걸 보고 놀랐다. 일본인이 소식이라는 건 역시 거짓말!
밥 먹고 약국에 잠깐 들렀다가 기요미즈데라(청수사)로.
청수사 올라가는 길. 교토에서 꼭 가야할 관광지 셋 중에 꼽히다보니 새벽에 가지 않는 한 이렇게 사람이 많다. 사실 나도 지난번에 갔을 때는 아침 일찍이라 사람이 없었고 E양도 마찬가지여서...사람이 바글바글한 상황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청수사다 청수사! 사람이 많아도 좋다!
으... 역시 사진이란 눈으로 본 것 만큼의 감동을 못담아내는 법이지만, 이렇게 작게 보면 더더욱 뭔가 달라! ㅠ_ㅠ
청수사 안에 있는 신사... 사랑운으로 이름이 높다지 아마. 그냥 보면 참 이 절에 안어울리는데, 또 어떻게 보면 어울린다고도...
청수사 본당을 거쳐 쭉 걸어가다가 본... 맞은편 산에 자리한 암자.
그렇게 절을 돌아보고...이번에는 기요미즈데라 앞길에 쭉 늘어선 재미있는 가게들을 느긋하게 구경하리라 벼르고 있었기에 천천히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내려갔다.
청수사 앞에 있는 가게. 채소절임 같은...쯔께모노라고 하나? 그런 것들을 파는데 교토 안 어디를 가도 일본인에게는 인기만발이다. 물론 외국인 관광객은 없다;
교토 특유의 찹살떡을 파는 가게. 무서운 언니(...) 인형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내려가다가 본 오뎅집! 맛있었다. 하나에 350엔씩 하는 비싼 놈들이긴 하지만 먹어보니 꽤 배가 불렀다. 덕분에 저녁은 늦게 주먹밥이나 하나씩 먹고 때울 수 있었다는.
한가지 무척 안타까웠던 건... 고작 2년 반 사이에 청수사 앞이 전보다 훨씬 관광지화되었다는 점이다. 아, 물론 전에도 관광지 앞 답기는 했지만, 상업적인 냄새가 강해져서 아쉬웠다. 이 가게고 저 가게고 파는 물건도 어쩐지 천편일률적이고. 며칠 뒤에 가본 은각사 앞이 오히려 예전의 청수사 앞 분위기였다. 쩝. 이쪽에서도 길만 잘 잡으면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곳도 남아있다지만...
자아, 그러고나니 벌써 저녁때다. 교토역으로 가서 아침에 못얻은 지도를 받았다. 친절하지도 않고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안내소였는데 (2층) 알고보니 9층에 대형 관광안내소가 따로 있었다. 그것도 내국인/외국인 따로 한 사무실씩. 어쨌든 그건 다음에 가볼 일...
우선은 저녁 생각도 별로 없고 해서 북오프를 찾아본 다음, 만화책을 몇 권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나오면서 봐뒀던 99엔샵(그렇다. 100엔샵보다 1엔이 싸다! 참 쪼잔한 상술이지만 그게 통하니 어쩌랴...어쨌든 24시간 영업이라 좋더라)에 들러서, 이제 돌아갈 때까지 숙소도 고정이고 하니 이후 며칠간 먹을 아침거리도 사고... 저녁을 아예 거르기는 무엇하니 주먹밥도 사고...
그렇게 장을 봐서 들어가니 녹초가 된 기분.
늦은 저녁을 간단하게 치우고 금방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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