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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2] 히로시마 (1)

일본/본섬 서쪽-긴키, 주고쿠

by askalai 2005. 2. 1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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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버스 폭이 좁다며 투덜거리다가 어느새 세상모르고 졸았다. 눈을 뜬 시각은 새벽 5시. 히로시마 도착은 5시 50분이었다.

히로시마 여행기를 일정대로 적기 전에, 왜 그 도시에 가고 싶었는지부터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고? 히로시마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히로시마에 가고 싶었다고 말할 때까지 줄곧 "히로시마는 왜?" 라거나 "히로시마에 뭐 볼 게 있어?"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듣자마자 바로 수긍한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히로시마에 왜 가고 싶었냐 하면...? 그냥 이라고밖에 못하겠다.

절친한 친구들은 대체로 "원폭돔 보러 가는 거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가사키에도 원폭돔은 잘해놨는데 뭐하러 히로시마까지 가?"라는 반응부터... (야. 아무려면 내가 원폭돔 하나 보려고 거기까지 가자고 하겠냐는 반응에 대한 응답으로) "넌 그거 하나 보러 거기까지 가고도 남는 녀석이야" 까지. 흠. 물론 원폭돔이 히로시마라는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난 '원폭돔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히로시마에 가보고 싶'었다. 무엇을 보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 3경 중 하나라는 미야지마가 옆에 있잖아!"라는 덧붙임도 사실은 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OK. 어떤 면에서는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원폭돔 하나 보자고 거기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지도... 아, 물론 단순히 엉뚱한 고집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경주에 갔을 때도, 제일 교통편이 안좋은 기림사에 꼭 가봐야겠다고 주장한 내가 아니었던가? 건칠불좌상을 봐야겠다면서... 하지만 수리중이어서 문제의 불상을 못본 데 대해서는 오히려 E양 쪽이 더 실망하지 않았던가...

"왜 히로시마에?"라는 질문에 변변한 대답도 없으면서 참 길게도 썼다 -_-;; 그냥 여행기나 적자.  

6시도 안되어 버스 센터에 도착하고 보니, 밖은 깜깜하고, 열린 가게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가방을 코인라커에 넣고, 센터 주변 까페가 문열기를 기다리며 어슬렁어슬렁 밖에 나가 편의점까지 갔다가 돌아갔을 때 기분은, 좋았다. 도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내 말에 E양은 "자기 최면 아냐?"라고 말했지만. 아무튼.

어스름 속에서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시민야구장이 코앞에 떠올라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즉, 달리 말해서, 지도상에 나온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는 뜻이고, 히로시마가 무척 작은 도시라는 뜻이었다. 평화 공원은 더더욱 작고 말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7시. 센터 안에서 봐뒀던 올리브 까페로 들어갔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돌아다닐 만큼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올리브 까페의 아침세트- 치즈 토스트. 예상을 뛰어넘는 맛이었다.

아침을 먹고 곧장 원폭돔 - 평화 공원으로 향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다. 공원은 무척 작다.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녀도 1시간이면 다 돌 수 있는 크기. 유명한 동상들과 기념비들을 보았지만...숙연한 기분이었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내내 기묘하고 복잡한 느낌은 따라다녔더라도 말이다.



평화의 공원. 평화의 불꽃부터 일직선으로 원폭돔까지...


원폭돔. 이건 해뜬 다음에 반대쪽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새벽에 봤을 때는 조금 음산해보였는데 이 사진에서는...새삼... 정말 평화로운 느낌이다.


여기를 보면서 느끼는 감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깊숙이 밀어넣어 놓았다. 아직 문 연 시간이 아니라서 기념관을 보지는 못했지만, 봤더라도 그렇게 다른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참혹한 일을 당했다. 그것만은 어떻게 말해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어떻게 포장하고 해석하느냐는 언제나 또 다른 문제로 남으니...

종이학 기념비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평안히 잠드소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보고 회의하거나, 한편으로는 무고한 희생자들을 내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무고한 희생자들을 외면한 채 부르짖는 평화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단지 무척 맑은 날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햇살이 강해졌고... 공원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로왔으며... 띄엄띄엄 언제나, 어디에서라도 책임은 엉뚱한 (100퍼센트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니 다시, 기록으로 돌아가자.

평화의 공원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이름은 달랐지만)는 8시 반에 문을 열었고, 그때쯤에는 (이미 말했듯이) 햇살이 꽤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곳에서 히로시마 전체 지도를 얻고, 1일 전차 승차권과 다음날에 쓸 전차+미야지마행 페리 승차권을 샀다. 각각 600엔, 840엔이다.


이런 전차다. 작고 예쁘며 느리다! 한 정거장이 한블록도 안되는데, 무척 편한 데다 차 안에서 밖을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다. 히로시마에서 제일 좋았던 건 전차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도로 중앙에 있는 전차 환승소에는 금새 익숙해질 수 있었다. 히로시마에 이틀 꼬박 (말 그대로 새벽부터 밤까지) 있으면서 여러 대의 전차를 봤는데, 대체로 시내 중심가를 오가는 전차는 새것이고 미야지마라든가 히로시마 항처럼 3,40분 떨어진 곳을 오가는 전차는 낡은 편이었다. 전자는 길이가 긴 것도 있었고 여러가지 광고 도안을 붙이고 있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저 초록색 전차밖에 못찍었지만.

아무튼 승차권을 끊어서 1착으로 간 곳은 북동쪽에 위치한 일본식 정원, 슛케이엔(縮景園)이었다.

항주의 서호를 모방하여 만들었다는데... 이름 그대로 풀이하자면 축소식 정원? 분재 비슷한 느낌이다 어째. 아무튼 여기도 건물은 피폭 당시 모두 전소했지만 연못이나 전체 구성은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그대로 다시 살리려 노력했다고 한다. 정원 안에 예전의 슛케이엔을 그린 그림과 더불어 그런 취지를 적은 판이 있었는데... 글쎄. 옛 정원과 같을 수 있을까.

아무튼 아침 일찍 간 덕분에 사람도 별로 없고, 날씨는 좋고, 한산하니 느긋하게 돌아보기 좋았다. 입장료는 250엔.




전형적인 구성이랄까. 연못과 다리, 집, 산책로...




정원 안에 매화원이 따로 있었는데, 제법 꽃이 피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작은 대숲이 있고, 그 옆에는 약초원이 있고... 그런 식이었다. 말 그대로 작게 이것저것 모아놓은 정원인 셈이다.


다리가 예뻐서 찰칵.


한바퀴 느긋하게 돌고 나니 11시. 일단 점심을 먹으러 중심가로 돌아갔다. 버스 센터가 있는 소고 백화점 바로 근처, 혼도리로.

(너무 길어져서 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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