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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신베이터우 - 단수이

아시아-동남/대만

by askalai 2005. 7. 2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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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전날 꽤 피곤한 스케줄을 소화했던 터라 느지막이 일어나서 천천히 나갔다. 그래봐야 9시가 되어 에어컨이 끊기자 오래 버틸 순 없었지만.

원래는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비정성시'의 무대라는 소도시에 가려고 했었으나...몸도 피곤하고, 비정성시도 못봤고 해서 그냥 온천에나 가기로 결정. 우선 딩타이펑에 한 번 더 가서 맛있고 배부른 식사부터 해주고, MRT를 이용하여 신베이터우까지 갔다.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

원래 온천에 갈까 말까 하다가 막판에는 안가는 쪽으로 생각했었고, 노천탕은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야 하는데 수영복 챙기기도 귀찮았고 등등의 이유로... 점찍은 곳은 노천탕이나 공원이 아닌 "역사가 오래된 목욕탕".

일단은 그 전에 있는 온천박물관부터 들렀다.



신베이터우의 온천박물관은 85년 전의 공중 목욕탕을 복구했다는 벽돌-목조 건물이다. 원래 신베이터우라는 온천지 자체가 독일인이 발견하고 일본인이 개발한 곳인지라, 박물관도 일본 느낌이 난다. 아니, 사실 이 지역이나 박물관이 문제가 아니라 대만 곳곳에 일본색이 남아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일제하에 있었기에 나이드신 분들은 대부분 일본어를 알며, 음식이며 풍습이며 언어에 일본어가 남아있다.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얘기지만, 한창 내선일체를 부르짖던 그 시절에 '내대일체'라는 구호도 존재했었다......

('선'은 조선을, '대'는 대만을, '내'는 일본을 가리킨다)

아무튼 그래서, 박물관 1층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고 2층에는 옛날 영화를 부분 부분 틀어주는 방도 있다. 잠시 들여다보니 노인 분들이 모여서 즐거운 듯 스크린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옛날 영화 포스터


복도

박물관을 돌아보고는 그 코앞에 있는 목욕탕에 무사히 안착. 뜨거운 한낮에 온천을 찾는다는 게 어쩐지 괴상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요금을 내고 낡디 낡은 목조 입구를 지나 탕으로 들어갔다.

에 또...... 상당히 재미있으면서 민망한 경험이었다. 이 온천은.

말했다시피 일본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구조가 일본을 많이 닮았는데, 거기에 한국의 공중 목욕탕 분위기가 살짝 합쳐졌달까. 아무튼 작은 온천 탕 하나에 둘러앉을 자리가 있고 탈의실 겸 선반이 같이 있는 온천인데... 당연히 외국인은 우리 뿐.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동네 할머니와 아줌마들... 으하하하.

그나마 G양과 E양이 있어 일본어로 어찌어찌 의사소통을 하고 온천욕을 할 수 있었으니 다행(먼산).

온천하고 바람쐬며 멍하니 시간 죽이고 해서 2시간은 족히 보냈나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혼자만 길게 온천에 들어갔다 나온 나. 상쾌한 기분으로 목욕탕을 나서서 MRT 역까지 걸어간 직후 상태가 나빠지다. 아마도 탈수-_-... 아직 공중 목욕탕에 다녔던 초등학교 시절 많이 경험했던 증상-_-... 그러나 MRT 안에서 상태 악화라니, 민폐였다 정말.

일단 단수이까지 가서, 역에서 내리자마자 들어갈 수 있는 어딘가(나중에 보니 요시노야였다)에 들어가서 오렌지 주스를 2잔 연달아 마시고 좀 쉬었더니 회복됐다.

자, 자. 그래서 이제부터는 단수이.


푸유궁(福佑宮)

단수이허(淡水河)의 하구가 바다와 합쳐지는 지역인 단수이. 석양이 아름다워 주말이면 타이베이 시민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란다. 근교라곤 해도 역시 시내에서 MRT로 갈 수 있다. 인천 같은 느낌이랄까. 그보다는 훨씬 작지만.

이런저런 상점이 늘어선 골목길을 구경하며 슬렁슬렁 움직이다가 단수이의 수호신이라는 마쭈의 묘가 있는 푸유궁을 보고, 예기치 못했던 스누피 가게도 보고, 맛없는 주스와 맛있는 차를 마시고, 캐나다 선교사로 대만에 근대 의학을 전했다는 마졔 박사 동상도 보고 하며 붉은 건물이 제법 멋스러울 듯한 홍마오청(紅毛城)이 있는 곳까지 갔다. 






마졔박사 동상

홍모라는 한자를 봐도 짐작하겠지만 훙마오청은 스페인 사람이 세워서 네덜란드 인들이 점령했다가 영국 영사관, 미국 대사관 등을 거쳐 중화민국의 소유가 된 파란만장한 건물이란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다며 가이드북마다 단수이에서 볼 곳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열심히 걸어가보니 공사중이었다 -_-

왠지 탈력해서 어쩔까 망설이다가, 가이드북에는 없지만 E양이 조사한 바 아주 좋다는 어인마두(漁人馬頭: ... 현지 발음은 기억이 안난다)로 향했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곳이라 버스를 타야 했다.

어인마두는 정녕 최고였다!! E양에게 경배를 -_-b

일단 바다를 향해 탁 트인 둑이라(아니 섬이라고 해야 하나 이건...나름대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시원했고,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다리도 제법 멋스러웠으며, 마침 주말이다보니 재미있는 공연(초등학생들의 재즈댄스 경연... 정말 웃기고 귀여웠다;)도 있었고, 석양도 멋졌다.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도 쭉 늘어서 있어서 와플+아이스크림이며 소시지, 닭구이 등으로 가볍게 저녁도 해결할 수 있었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페리를 타고 역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만족이었다.


어인마두의 황혼


어인마두의 밤

점심이나 저녁이나 다 애매하게 때워놔서 뭔가 술이나 한잔 하며 안주로 배를 채울까 했는데, 마땅한 가게를 못찾아서 포기. 숙소로 돌아가면서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와 컵라면을 샀다. 그런데 컵라면을 해먹으려면 우리방 아래층에 있는 로비에 가야 했고, 로비엔 사람이 가득했다.

아, 부연설명을 하자면, 로비에는 원래 밤마다 사람이 가득했다. 우리야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우리끼리 노느라 바빠서 어울릴 엄두는 못냈지만 말이다. 이유인즉슨, 이 숙소에는 원래 여행자가 아니라 싼 숙소라서 묵는 장기체류자들이 꽤 있었고, 이들은 아래층 도미토리에 묵었으며, 여러 번 말했다시피 에어컨은 11시 넘어야 나왔고, TV는 로비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그날도 TV앞에 모인 이들과 상관없이 식탁에서 조용히 컵라면을 해먹고 맥주를 마셨다(...)

크. 대만맥주도 맛있더만 >_< 컵라면도 맛있었고. 하나는 우리나라에 없는 새우탕이었고 또 하나는... 버젓이 '김치'라고 써있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만든 물건은 아닌) 물건이었는데 제법 진짜 김치 사발면같은 맛이 났달까.

그렇게 3일째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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