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오후에는 배를 탔다.
앞에 적었듯이 소매물도에 가지 못하게 되어, 그나마 20분 거리에 있어서 아직 배를 띄울 수 있는 한산도라도 가자, 하게 된 것.
갈매기가 배를 따라오는 모습이 강화도에서 배를 탈 때와 흡사하다. 바다만 빼면.
한산도는 보통 제승당(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을 보러 가는 섬이다.
우리는 숙소 아주머니께 들은 팁이 있어,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르르 제승당으로 향하는 흐름에서 벗어나서 선착장 앞에 선 마을 버스에 바로 올라탔다.
선글래스를 쓴 퉁명스러운 기사분이 한 바퀴 도는 거 안된다고, 종점에서 한 번 더 카드를 찍으라고 하신다.
은근히 이 코스를 즐기는 관광객이 많은가...했지만
버스에 앉아서 한산도를 한 바퀴 돌면서 느낀 바 기사분은 전형적인 츤데레.
무뚝뚝한 얼굴로 거칠게 차를 몰면서도 마을 분들은 일일이 편한 자리에 내려주고,
보건소에서 몸이 불편한 아저씨가 타자 안전하게 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속도를 올리고,
경적을 울려 뛰어나온 마트 직원들에게 싣고 온 물건 상자를 전해주고,
뭍에서 수리할 냉장고를 버스에 싣는 청년들이 나타나자 무뚝뚝한 얼굴로 내려서 돕는다.
바닷가 도로를 달릴 때마다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도 좋았지만, 인구 1400여명의 섬을 도는 버스의 일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버스 안에서, 너무 예뻐서 창밖으로 급히 찍었더니 삐뚜름...
사진 각도를 돌릴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굽이굽이 도는 길이 멀미가 날 위험이 좀 있긴 하지만; 한번씩 굽이를 돌아 드러나는 깔끔한 작은 마을들이...
집 벽과 지붕 색을 통일해서 칠한다거나 하면 유명짜한 그리스 마을보다 못할 게 없겠더라.
그렇게 해서 거기 사는 분들에게 무슨 득이 되느냐 생각해보면 그건 또 잘 모르겠지만 ^^;
한 바퀴, 아니 버스 번호가 두 개 있으니 아마도 반 바퀴 섬을 돌고 내려서 선착장 근처에 자리한 제승당으로 걸어갔다.
사진은 제승당을 향해 걸어가다가 보이는 바다와, 그곳에 장식처럼 꽂아둔 깃발
보통 관광온 사람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제승당으로 몰려가서 그런가, 그 때를 비껴서 한적하니 좋더라.
사진은 이순신장군이 쓰던 활터라는데, 아마 이쪽 건물은 새로 지었을 테고
저 멀리 보이는 과녁이 사실 바다 건너편에 있다. 설명에 따르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거리 감각을 익히기 위해 굳이 여기에서 연습을 시켰단다.
제승당 건물은 대부분 새로 지었고, 하나뿐인 휴게소까지 포함해서 건물 배치 감각은 썩 좋지 않다. 애정이나 고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제승당 건물은 형식이라도 갖췄지, 휴게소 건물에는 경악을 금치 못함)
반면에 조경사는 나름 자부심이나 생각이 있었던 모양, 나무 배치는 훌륭하더라.
그런 차이가 사소해보이지만 사실은 꽤 큰 차이를 낳는다는 사실을 더 많이들 알아봐야 할 텐데 말이지...
한산도는 제승당보다는 마을버스 때문에 반나절 여행지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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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에서 통영으로 돌아가서는 짐을 찾고,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거제도 저구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저구까지 60분, 거기서 다시 10분을 더 가서 해금강이 종점인 시외버스다.
저구에 도착하니 이미 밖이 어둡다. 잡아둔 숙소는 저구에 하나뿐인 게스트하우스, 썬셋뷰. 시외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위치한 돌담집.
독방을 싸게 쓸 수 있는데, 깨끗하고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어 간단한 요기가 가능하지만 화장실 겸 샤워실이 좁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썬셋뷰의 일반적인 특징. 우리 방은 다른 방보다 넓은 대신 텔레비전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장님은 미안해하며 tv가 좀 낫게 나오는 방으로 바꾸겠냐고 했지만 그냥 묵기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마을에 몇 개 있는 식당 중에 숙소 사장님이 맛있다는 집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나마 찾아간 곳은 음, 배가 고파 잘 먹기는 했지만 별로 음식을 잘한다고는 못하겠다 ^^;
해물된장인데 게만 맛있더라. 거제가 게가 유명하던가, 나중에 통영에 가서 훨씬 푸짐하고 맛있는 해물된장을 먹었지만 게만은 여기가 더 나았다.
그나저나 바람소리가 무시무시하다. 배를 타지 못할 거라면 굳이 저구에 숙박을 잡은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