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9일-13일 통영, 거제 여행
사실 주된 목표는 거제도였고, 좀 걸어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나 태풍영향으로 바람과 파도가 거세진 데다가 정작 가보니 걷기 좋게 되어 있질 않아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통영에서 보냈다. 게다가 어차피 거제도에 가는 방법도 서울에서 거제도 고현까지 바로 가는 것보다 통영을 거쳐서 가는 게 시간, 금액 모두 유리한지라 둘을 묶어서 여행을 짰다.
(참고.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통영까지는 2만 5천원이 좀 안되는데 고현까지 가면 거의 만원을 더 내야 한다. 그리고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거제도 남쪽 끝 저구마을이나 해금강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6천 백원. 고현에서 저구마을이나 해금강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시외버스보다 더 드문 듯 하다)
자, 그래서 9일 오전 버스를 타고 통영에 도착.
몇 달 전에 툥영을 찾았을 때는 택시를 타고 오갔는데,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덕분에 통영 시내버스 체계가 타지인이 이용하기 편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단 서울에서 쓰는 버스카드를 그대로 쓸 수 있고,
번호에 규칙이 있어서 100번대 버스는 조금씩 코스는 달라도 다 어디로 가고, 200번대 버스는 다 어디로 가고 하는 식으로 중요 거점마다 나누어 놓았다.
그리고 어차피 통영 시외버스터미널과 중앙시장 두 군데는 거의 모든 버스가 오간다.
하여, 시외버스터미널 나가서 바로 보이는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중앙시장으로-
예약해둔 시티호스텔부터 찾아가서 짐을 놓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는데, 이런.
숙소에 2인실이 잘 없을 때 이미 짐작했어야 하는 건데, 목요일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조금 걷는데 사람에 치여서 피로가 몰려오고, 봄에 보았던 아름다운 통영은 어디였을까 싶어질 지경...
겨우 대풍관까지 가기는 했는데 가고 보니 E양이 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 좋아하는 걸 먹자고 줄서서 기다릴 순 없는 노릇.
다시 중앙시장으로 발길을 돌려 회부터 먹기로 했다.
그래서 간신히 3시쯤 받은 고등어회의 아름다운 자태!
산지의 고등어회란 이런 것이구나. 비린맛은 하나도 없고 고소하다. 크 다시 떠올려도 아름다운 맛이었어 ㅠㅠ
게다가 가격도 싸다. 2인분 2마리에 2만원~
다만 안타깝게도 같은 집에서 추가 주문한 매운탕(고등어는 아니고 다른 생선을 이용함)은 영 아니어서 가게 자체를 추천하기는 좀 그렇다.
중앙시장이 워낙 크다보니 실은 나도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고; 어쨌든 고등어전문 같더라.
고등어회에 소주 한잔 하고 일어나니 이미 늦은 오후. 근처의 동피랑이나 어정어정 보러 갔는데, 여기도 사람이 너무 많으니 내가 몇 달 전에 보았던 그곳이 아니다.
동피랑에서도 빨리 후퇴하고 이순신공원을 찾아 걸어갔다.
여기는 좀 좋다. 마침 해떨어지기 전이라 날도 서늘해졌고, 한적하고, 풍광도 좋더라.
물론 저기 작게 보이는 그림자가 충무공이십니다.
도착하고도 몇 시간만에 제대로 본 기분이 드는 통영 앞바다
중앙시장 -> 이순신공원까지는 공업사들이 즐비한 길을 걸어서 공기가 영 안좋았는데,
돌아갈 때는 공원 뒷길로 해서 통영기상대로 이어지는 한적한 길을 걸었다.
위 사진은 기상대에서부터 시내까지 내려가는 골목길인데...
여행자에게는 운치 넘쳤으나, 사진에 보다시피 난간을 대놓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고 좁은 골목길이라 사는 사람들이 고생하겠다.
그거 걸었다고 피곤하기는 하고,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아서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다가 빼때기죽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가게 이름은 간단명료 '통영 빼때기죽' 골목길 안쪽에 있어서 그런가 사람은 적던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더라.
빼때기죽이야 처음 먹어보니 어디가 더 맛있는지 비교하기 어렵지만, 같이 주문한 호박죽이 끝내주게 맛있었으니 아마 빼때기죽도 다른 곳보다 맛있으리라 짐작할 만하다.
시티호스텔 옥상에서 야경 좀 보고 두런두런 이야기나 나누다가 일찍 취침.
...그러나 2인실이 없어서 에이 하룻밤인데 뭐 하고 4인실 여성 도미토리를 잡았더니만
다른 두 명이 늦게 들어와서 씻고 일찍부터 자명종 울리는데 안일어나고 하는 통에 우리도 잘 못잤다. 이게 도미토리의 문제점이지 하...
*
어쨌거나 자고 일어나서 10월 10일.
아침부터 문자가 들어왔다. 태풍 영향으로 소매물도 여객선 취소.
잠시 댕-
...원래 사흘째에나 가려던 걸 태풍 소식에 앞당겨서 예매했는데, 바람은 아직 괜찮아도 파고는 예상보다 빠르게 높아졌던 거다.
둘 다 이걸 어쩌지 망연해 있다가 마음 접고 아침을 먹으면서 시티호스텔을 지키는 아주머니께 여쭤보고 수정.
다행히 아직 움직이는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20분 거리의 한산도에 가기로 했다.
중앙시장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케이블카 하부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다음, 짧은 산행으로 미륵산 정상을 오가며 전망대마다 들른다.
내내 보이는 바다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아름답다고밖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케이블카를 이렇게 찍어놓으니 무슨 놀이기구 같기도 하고 :)
내려가는 길에 한 차에 같이 탄 다섯 분이 나누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계속 쿡쿡거리고 웃다 내린 것도 좋은 기억.
내려가서 배타기 전의 점심은 충무김밥으로.
이건 통영에 처음 갔을 때 먹어봤다고 생각했는데, E양이 치밀하게 조사해서 고집한 '뚱보할매 충무김밥'에 갔더니 맛이 다르더라 허허.
빼때기죽, 충무김밥과 마찬가지로 꿀빵과 유자빵도 수많은 집에서 팔지만 맛의 차이는 집집마다 크다.
그런 뜻에서, 혹시 이 포스팅을 보고 나서 통영에 가시거든 딱 집어서 써놓은 집에 가보시라고 하고 싶다.
아무 데서나 사먹으면 이 동네 명물이라더니 뭐 그냥 그렇네 하게 됩니다... 몇 달 전의 저처럼...(...)
꿀빵도 마찬가지. 통영꿀빵 중에 최고라는 '오미사꿀빵'은 12시 넘어서 갔더니 이미 품절이라 실패했지만
35년 전통을 자랑하는 꿀빵집, 그리고 유자빵이 제일 맛있다는 '거북선꿀빵'의 꿀빵도 괜찮았다. 아, 물론 이집 유자빵은 정말 훌륭하다.
지금까지 열거한 음식이 이번 여행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의 거의 대부분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