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아침, 더 동쪽에 있는 구시로로 출발
오비히로에서 특급열차로 다시 한 시간 이십 분. 지명은 아이누어로 '건너갈 수 있는 강'이라는 구시나이에서 유래했다는데, 일본 제1의 어항이라고 한다.
별명은 안개의 도시. 여기부터 더 동쪽으로는 개발이 별로 되어 있지 않다. 별명은 안개의 도시라는데 나는 안개는 보지 못하고 태풍을 경험했다.
그리고 구시로에는 일본의 국립공원이자 람사르 조약에 등록된 거대한 습지가 있다.
푹 쉰 덕분에 가뿐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첫차로 구시로 도착. 전날 잡아둔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바로 서부습지행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버스 시간이 떴다.
할 수 없이 어정어정 역 근처이자 숙소 근처에 있는 와쇼 시장 구경.
하코다테보다 크다는 느낌은 아닌데, 이 시장이 더 크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와쇼 시장의 특징은 '골라먹는 덮밥'이다.
시장 한가운데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저렇게 있고...
이 가게, 저 가게에서 이런 식으로 신선한 해산물을 준비해둔다. 크기별로 가격이 다른 밥그릇을 사서 들고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담으면 자기만의 덮밥 완성...
가격은 하코다테의 덮밥보다 비싼 듯도 하고. 물론 뭘 고르냐 나름이겠지만...
가장자리 쪽으로는 수산시장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한국의 수산시장과 차이라면 바닥에 물이 별로 고여 있지 않아서 다니기가 쉽다는 점. 관리하는 방식이 다른 걸까.
당연하다는 듯이, 털게도 판다.
시장에서 바로 사서 쪄먹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차마 나 혼자 시도하기는... 무리... 하하.
*
버스 시간을 한번 더 확인하고 서부습지로 출발! 기차로 갈 수 있는 동부습지도 있지만, 그쪽은 아바시리행 열차를 타면 지나가면서 볼 수 있을 터라 서부습지를 택했다.
1차 목적지는 버스를 타고 40분쯤 가서 나오는 '온네나이 비지터센터' 정류장에서 도는 산책로. 여름이 아니라서 습지가 마르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바스락 바스락
사람이 없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팀이 하나인가, 둘인가 있기는 했는데 조금만 걸으면 보이지 않게 된다.
비에이 정도는 아니지만... 이 풍경도 좋았다.
한 바퀴 돌고 다시 버스를 타러 큰 길로.
사슴 주의. 보지는 못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버스로 몇 분 안걸리지만 실제 거리는 제법 된다) 가서 습원전망대에 다시 내렸다.
여기 산책로에는 곰 주의! 표지판이 있다. 곰은 만나지 못했다 ㅋ
여기에서는 간간히 친구끼리, 가족끼리 온 듯한 분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외국인은 없는 것 같았지만.
흔들다리.
전망대 위에서 서부습지가 다 내려다보인다.
내 사진기는 6년 된 똑딱이이기에 이렇게 넓은 풍경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실제로 보면 정말 광활하다.
전망대도 참 잘해두었다. 사람이 없어서 음산한 분위기가 나기는 하지만...
*
오비히로에서 이틀을 푹 쉰 덕인지 아직 그렇게 피곤하지 않다. 해질녘, 시내로 돌아가서 또 어정어정 강가로 내려가봤다.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다리, 누마사이교로 가본다.
다리 양쪽으로 춘, 하, 추, 동을 형상화한 네 개의 소녀 조각상이 있다. 넷 다 찍었지만 사진은 하나만... 이 조각상은 과연 어느 계절일까요? :)
(겨울이랍니다)
정말 작은 다리다. 유럽의 아담한 도시들에서 본 어느 작은 다리보다 더 작다. 개천 산책로 정도에 가깝다.
다리를 한 바퀴 돌고, 구시로에서 유일하게 밤까지 영업한다는 피셔맨 와프로 건너갔다. 건물 안은 사실 별로 매력이 없고, 그 앞에 펼쳐진 대형 포장마차가 눈길을 끈다.
10월까지만 영업한다는 포장마차.
내부는 이런 식으로... 석쇠가 쫙 깔려 있고, 숯불이 탄다. 손님들은 그냥 빈 자리에 앉아야 한다.
한 줄로 쫙 가게들이 있는데, 따로 돈을 내고 살 게 아니라 쿠폰을 한꺼번에 구입한 후에
(1000엔짜리 한 줄을 사면 500엔, 300엔, 200엔, 100엔, 50엔 두 장 하는 식으로 뜯어쓸 수 있게 되어 있다) 돌아다니면서 구입하게 되어 있다. 생맥주 한 잔에 500엔!
처음에는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들여다보고 식탐 폭발... 에라 모르겠다, 이제 여행도 중반이 넘었는데 위 상태가 나빠지더라도 일단 먹고 싶은 건 먹자!
맥주를 사고... 아스파라거스 말이를 굽고, 토마토를 굽고, 아스파라거스를 굽고, 버섯을 구워서 처묵처묵 시전!
다행히 이런 대형 구이 포장마차인데도 혼자서 먹을 만한 분위기다 :)
석쇠에 이런 식으로 굽는다. 난 오징어를 시도해봤지만, 오징어나 석화나 생선 토막 같은 건 그래도 직접 굽게 두지 않고 전문가들이 돌아다니면서 구워준다.
그래서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오징어는 아래와 같이...
좀 후회한 게, 오징어는 가격에 비해 양이...많았다... 보통은 이게 단점이 아닐 텐데 결국 남겼다 ^^;
마지막 남은 쿠폰을 없애느라 통통한 굴 하나에 달콤한 토마토를 구워서 깔끔하게 입가심 (?)
신기한 게 이렇게 먹고 마시고 나니 오히려 다음날에는 위가 덜 아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
*
10월 16일.
어쨌든 기분좋게 일하다가 자고 새벽같이 시레토코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일본어를 못하다보니 티비를 확인할 생각도 못하고 힘겹게 역까지 나갔는데... 도착해서 들은 말인즉 "전차량 운행중단"
태풍이었다.
잠시 멘붕해서 멍하니 서 있다가 괜히 태풍 상황을 중계하던 지방방송국 리포터에게 인터뷰 요청이나 받고 (죄송합니다 전 일본어 못해요...)
다시 힘겹게 숙소로 돌아가서 체크아웃 취소. 하룻밤 더 묵기로 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밥도 숙소 1층에 있는 기사식당 풍의 밥집에서 도시락으로 해결.
일하다가 문득 책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옆 건물 옥상에서 넘친 물이 바람을 타고 커튼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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