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중앙을 차지한 사막을 레드센터red center라고 부르는 이유, 단순하다. 보시다시피.
그러고보면 호주 지명은 대개 사람 이름을 땄거나, 눈에 보이는 그대로거나...
엄밀히 말해서 쿠버피디까지는 아직 레드센터가 아니다. 그냥 아웃백 황무지다. 하지만 편의상 여기서부터 위치로그를 레드센터로 잡으련다.
여행 일정이 좀 꼬였는데, 굳이 8자를 그리면서 시드니에서 애들레이드로 간 건 '버스로 이동하면서 쿠버피디에서 1박'을 하기 위해서였다. 비행기라면 시드니나 멜번에서도 바로 울룰루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지만, 육로를 이용하려면 여기에서 북부 다윈까지를 잇는 철로/고속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더하여 철로를 이용하면 쿠버피디에 들르기가 번거롭다.
애들레이드에서 쿠버피디까지 850킬로미터 정도. 새벽 6시에 20인승 버스를 타고 내리 황무지를 (운전사 겸 가이드였던 JP의 표현을 빌자면 'there is nothing') 달려서 오후 6시쯤 쿠버피디에 도착한다. 하루 자고 다음날 7시쯤 다시 출발해서 오후 5시쯤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 앨리스 스프링스에 도착한다. 이렇게 1박 2일을 묶어서 195달러. 반대방향이라면 더 싼 투어도 있지만, 이쪽에서는 이 투어를 이용하거나, 사람을 모아서 렌트카를 몰거나다. 20명 중 동양인은 나 외에 일본 여자 한 명. 나머지는 독일인 다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인과 네덜란드인 몇 명. 기억에 남는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귀찮으니 상세 묘사는 생략;
창밖은 건물도 거의 없는 초원이었다가 황무지로 변했다. 다들 조용히 자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아일랜드 출신이라 그런지 JP의 선곡은 훌륭했다... 캥거루 섬을 겪고나니 감동이 밀려올 정도였다. 가~끔 하는 썰렁한 농담도 호주나 다른 유럽 애들보다는 재미있었고. 종합하자면, 아주 아주 좋았다. 이용해본 투어 중에 제일 흡족했다. 혼자 겨울 차림에 목을 꽁꽁 싸매고도 기분이 좋았다. 설마 계속 삼킨 타이레놀에 취했던가? :)
사소한 문제라면 가끔 먹구름이 몰려오고 유리창에 빗방울이 떨어지더라는 정도...
최근 몇년 사이 E와 G가 부쩍 비난한 바로는-_- 내가 여행할 때 비가 많이 온단다. 글쎄 확률을 따져본 적은 없지만; 엄청난 가뭄이라던 캥거루 섬에 비가 온 데 이어 사막에서도 비가 오니 나까지 의심스러워졌다;
...어떻게 조정하고 찍었는지 기억이 안나;
위 사진에서 10분 후
쿠버피디가 가까워오면서 비구름은 사라졌지만, 계속 쌀쌀했다. 낮 기온이 너무 높아서 땅굴(dugout)을 파고 산다는 쿠버피디의 명성이 무색하다.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안내받은 오팔 광산 박물관에서 가이드 언니가 팔을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진짜 더울 땐 낮기온 50도까지 가거든요.' 우어. 추워서 다행이다;
그래도 덕아웃 안은 따뜻하다
내가 개고생을 마다 않고 이 투어에 낀 이유! 세계 최대 오팔 산지...라는 건 나에겐 별 감흥이 없고, 호빗스러운 이 땅굴집에서 자보고 싶었다!!
관광객들 보여주려고 일부러 남겨둔 오팔
귀엽게 생긴 가이드 언니. 말도 잘하더라. 드라이버를 들고 동네 마실 나가서 오팔을 캐보는 걸 '누들링'이라고 한다는 얘기며 덕아웃을 파는데 얼마나 걸리고 구조를 어떻게 잡는지(물을 써야 하는 화장실과 부엌과 욕실은 전부 다 현관에 몰죠), 화장실 수명은 어떻게 되는지(수세식이긴 하지만 80년 쓰면 냄새가 나기 시작하니까 폐쇄하고 옆에 다시 구덩이를 팝니다), 값도 싸고 냉난방비도 안들고 참 좋은 대신 오팔 때문에 확장이 더럽게 비싸다는 얘기 등등.
'모처럼 토요일 저녁에 왔으니 술도 마시러 가겠죠? ** 술집에 가거든 바텐더 중에 ***를 찾아요. 그 사람은 반만 호빗이니까 괜찮아요. 나머지요? 다들 미쳤죠 뭐. 아, 나요? 난 다른 지방 가서 살다가 최근에 돌아왔거든요. 음. 4분의 3 정도 정상이랄까.'
안타깝게도 술을 마시러 가지는 못했다. 피자를 먹고 숙소에 돌아간 게 다였다. (제길 난 이런 짓 하기엔 나이가 많아! 얘네들 다 20대 초반이잖아!!) 그나마 그 코딱지만한 동네에서 돌아가는 길도 헤매고 대삽질을 했다. 하하. 삽질 상세내역은 생략. 남반구 밤하늘이 참 아름답더라.
대충 씻고 따뜻한 덕아웃 숙소에서 취침. 4월 26일 종료.
4월 27일, 일어나서 가볍게 아침을 먹고 다시 출발. 여기에서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앨리스 스프링스까지 다시 685킬로미터.
아침에 본 쿠버피디. 작은 도시라 해도 2천명은 살건만, 땅 위로 나온 집이 별로 없다.
숙소 앞
다시 사막을 달리고 또 달리고
아참, 쿠버피디 주위 사막은 매드맥스와 피치블랙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괴상한 도시 이름은 위에 거론한 두 가지 작명법 외에 세번째 방식으로 지어졌다. 울룰루나 울릉공처럼 지역 원주민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 쿠버피디는 '소년들의 물웅덩이'...?
달리고 휴식. 달리고 휴식... 오후, 애들레이드와 쿠버피디가 속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가 끝나고 노던 준주(인구가 워낙 적어서 그런지 정식 주정부가 없음)로 넘어가는 표지판이 나왔다. 드디어 레드센터 진입이다.

그와 동시에 파리도 많아졌다. 진짜 레드센터다. 가끔 들르는 주유소/가게마다 초록색이 보이는 게 생소할 정도다. 이런 땅을 또 달리고 달려서 6시, 이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녹색이 많은 쾌적한 도시에 진입... 앨리스 스프링스.
미리 점찍어둔 데다 JP가 추천하기도 하는 숙소 애니's 플레이스로 들어갔다. 하필이면 도미토리 6인실에서 하나 남은 자리가 에어컨 바로 앞. 잠시 엎어졌다가 씻고 저녁먹고 일행들과 술 한 잔 하고. JP가 '나 스물 아홉이야! 인생 끝났어!' 하길래 '이보셔, 인생은 서른부터야!'라고 큰소리쳐놓고 바로 잠자리로 후퇴. 약 먹고 뻗었다-_)
결론: 사서 고생을 후회하지는 않으나, 체력은 받쳐주지 않았다.
글쎄, 아예 애들레이드에서 앨리스까지 5박 6일이나 7박 8일 야외투어... 같은 거였으면 오히려 나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