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5일,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Cordoba)
그라나다에서 코르도바까지는 버스로 2시간 반. 스페인 남부는 버스가 편하다. 기차보다 버스편이 더 많고, 더 싸기도 하고, 시설도 떨어지지 않는다.
역시 버스 안에서 보는 풍경... 건조하다.
지은이는 스페인 남부에서 코르도바가 제일 좋았다는데, 나는 꿈 속에서 돌아다닌 것처럼 기억이 희미하다. 너무 뜨거워서다. 덥다는 말보다 뜨겁다는 말이 제격이다. 왜 스페인 남부가 불가마라고 불리는지 알겠더라. 너무 뜨거워서 한낮 시에스타 시간에는 쉬고, 오후 5시인가 6시가 넘어서야 다시 관광을 나갔건만 그때는 또 낮 동안 달아오른 땅에서 열기가 올라와서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나중에 사진을 보고서야 아, 코르도바는 참 아름다운 도시구나 실감했을 지경.
어쨌든 버스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12시경이라, 해는 뜨거워도 거리는 그럭저럭 다닐 만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그라나다 지점이 없어져서 이용하지 못했던 시티은행을 찾아서 돈을 찾고, 밥을 먹었다.
워낙 뜨겁다 보니 이렇게 두꺼운 차양을 쳐서 해를 가리는데, 이게 또 멋이 있다.
숙소를 잡은 광장 부근의 풍경. 거리가 텅 빈 이유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시에스타 시간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밤에 논다.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관광객밖에 없다.
늦은 점심. 그래도 정보를 뒤져서 안달루시아 지방 요리라는 가스파초(차가운 수프) 중에서도 코르도바 특산이라는 살모레호를 먹어줬다.
더운 날씨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한참 자고 어슬렁 어슬렁 구시가지로 걸어 나갔지만... 어디가 늦은 오후냐 싶은 날씨. 그리고 달아올라서 더 뜨거운 공기.
그래도 코르도바의 하얀 집들은 참 사진발이 좋다.
길거리가 그냥 그림이다.
골목길 저편에 슬슬 보인다... 코르도바에 남은 이슬람 유적의 중심, 메즈키타 외벽이다.
메즈키타 외벽
천년 동안이나 이슬람 회당으로 기능했지만, 스페인 땅이 다시 카톨릭 세력으로 돌아간 후에는 대성당으로 본분을 바꿨다.
현재 서구세계에 남아 있는 '모스크' 중에서는 가장 크다고 한다.
메즈키타 내부는... 다음날 아침 9시 전에 들어가면 무료이기 때문에 다음 날로 미루고(...)
메즈키타는 과달키비르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이게 무슨 상징물이었더라 음...
아무튼 저 상징물을 지나고 나면 로마 다리. 이름 그대로 로마시대 다리다. 그것도 무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
보수 공사를 여러 번 했다고는 하지만 과연 로마가 건축의 달인들이기는 하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탑을 볼까 싶었으나 햇빛이 무서워서 통과.
메즈키타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금방 지친다. 어쨌든 저녁 먹을 시간도 되어가고 하니, 대충 무난해 보이는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한입거리 타파스 세트. 그릇 하나하나가 작다. 다 먹을 만은 했으나 특별히 맛있었던 기억은 없음. 유럽은 대체로 습기가 적어서 그늘에만 앉아도 더위를 견딜 만 하지만... 과연 스페인 남부. 낮의 열기가 빠질 때까지는 그늘에 앉아도 뜨끈뜨끈하다. 동남아의 여름이 사우나라면 여기는 그야말로 불가마, 찜질방.
해가 저물고 좀 살만해졌다 싶을 때 다리 근처에 있는 알 카사르 궁전을 보러 갔다. ('알 카사르'는 하나가 아니어서, 세비야에도 있고 그라나다에도 있다) 그냥 더워서 늦게 갔을 뿐인데, 입장권을 사려고 보니 여름 야간개장 중이고 심지어 밤에 레이저쇼도 있다. 럭키!
잘 가꿔놓기도 했지만 물이 있고, 녹색이 풍성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좋아진다.
예전에 티벳에서도 느꼈지만, 건조한 땅에서 물과 꽃과 나무란 사치스러움을 과시하는 방법이자,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방법이다.
곳곳에 조각상들도 있다. 알 카사르 자체는 이슬람의 작품이지만, 당연히 중세 시대부터는 카톨릭 왕가가 이용했기에 조각상 역시...
드디어 레이저쇼로 코르도바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시간은 30분 정도. 레이저쇼라기에 평범한 분수쇼 같은 걸 상상했는데, 이야기가 있었네.
그리고 분수쇼도 이어진다. 규모는 옛날 한옛날 바르셀로나에서 본 것보다 작지만, 기분 좋게 즐기기에는 모자라지 않다.
로마 다리의 야경
메즈키타 야경
그리고 취침. 푹 잤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메즈키타 내부를 관람하고 세비야로 떠난다.
메즈키타의 종탑. 워낙 커서 시내 어디서나 보인다.
역시 유적 관람은 사람이 없을 때 해야 제맛...
사실 이 시간에 관람을 무료로 개방하는 건, 관광객이 아닌 신도와 순례자들을 위해서지만 :)
벽과 천장은 화려하게 조각했을 지 몰라도 내부는 텅 빈 느낌이 강하다.
본래부터 카톨릭 성당이라면 이럴 리 없지만, 이슬람 대회당이었다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천장. 벽. 사람도 동물도 들어가지 않는 섬세한 조각들.
물론 카톨릭 아래 들어간 지도 몇백년이니 이슬람풍으로만 남아 있을 리는 없다.
워낙 큰 대회당이다보니 사이사이 예배를 보기 위한 공간은 따로 구획을 지어두기도 했다.
거대한 벽과 메즈키타 건물 사이에는 정원이 있다. 역시 이른 아침이라 한산하다. 그늘에 앉아서 우물우물 빵을 먹었다.
메즈키타 내부 바닥에서.
리스본, 2012년 7월 17일 (0) | 2013.04.07 |
---|---|
세비야, 2012년 7월 16일 (0) | 2013.04.02 |
알함브라, 2012년 7월 14일 (0) | 2013.03.18 |
그라나다, 2012년 7월 13일-14일 (0) | 2013.03.18 |
말라가, 2012년 7월 13일 (0) | 2013.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