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사람 많고, 시끄럽고, 현지인은 꼭 마스크를 쓰고 다닐 정도로 공해가 심각하며, 좁은 골목길마다 오토바이가 돌아다니고, 신호등 따위는 없고, 정전이 잦은 도시다. 아니, 정전이 잦다기보다는 전기공급이 하루에 몇 시간 안된다는 쪽이 더 정확하겠다.
도착한 날부터 정전을 경험했다. 타멜 거리를 걷다보면 어느 순간 불이 확 꺼진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듬성듬성 불이 켜진다. 자가 발전기를 돌리는 가게들이다. 발전기를 사두지 않은 가게들은 촛불과 배터리형 비상등을 켤 뿐, 어둑어둑한 채로 물건을 판다.
사진만 보면 밝은 여행자 거리 같지만;;
숙소도 예외가 아니다.

여행 전에 산 물건들 중에서 접이식 더플백, 코인 티슈, 배낭 커버도 유용했지만 이 촛불 대용 랜턴은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없으면 큰일날 뻔 했다. (...물론 없었으면 그 동네에서 뭐라도 사서 다녔겠지만) 정전이 되지 않는 소도시라도 조명 자체가 적기 때문에 어디 갈 때는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
촛불형으로 바꾸면 꽤 밝지만, 책을 읽기에는 어둡다. 중형이라면 더 밝았겠으나 애초에 이번 여행은 책을 읽지 않기로 작정하고 갔기 때문에 소형으로 샀다. 어둑한 조명에서 음악을 들으며 수첩에 끄적이는 것도 나름 운치 있다 :)
이렇게 어느 모로 보나 상황이 엉망진창인데도 카트만두는, 네팔은... 느긋하다. 어느새 그 분위기에 젖어서 왠만한 건 그러려니 하게 되고 기다림에도 익숙해지더라.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밝고 편하고 바쁘게 사는 데 익숙해졌는지 절감하면서.
낮의 타멜
...그러나 난 역시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진 인간. 운치도 며칠이지 결국엔 자가 발전기 있는 숙소로 옮겼다;
그런 뜻에서 처음에 갔던 카트만두 피스 게스트하우스는 비추! 더 싼 가격에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 있기도 하지만, 친절하다는 말 하나 믿고 갔는데 그 친절이 참 가식적인 친절이었고, 그 사이 조그마한 여행사와 손을 잡아서 도착한 여행객에게 차를 대접한다면서 여행사 매니저와 만나게 하는 데에서 감점 백배. 그에 비해 나중에 간 Souvenir 게스트하우스는 조그마한 가족경영 숙소라 마음도 편하고 전기도 들어오고 여러 모로 좋았다. 둘 다 타멜 중심가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어서 밤에 시끄럽지 않다.
꽃이 많은 옥상 정원도 가산점
그러고보면 이것도 참 신기한 점이었다. 그 시끄럽고 정신없고 공기 지저분한 거리에서도 어딘가 들어가기만 하면 불쑥불쑥 이런 평온한 정원이 나온다는 것... 이런 느긋함이 있어서 그래도 저 도시가 돌아가는 걸까, 느긋함 때문에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