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하고, 아름답고, 즐겁고, 뿌듯한 하루였다. 참 얕은 생각이라 부끄럽긴 하지만 그야말로 "그래! 이게 우리가 상상하던 티베트였어!"였달까. (정말로 다른 분과 저런 말을 나눴다)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는 것보다 좀 비싸긴 하겠지만 너무 아끼는 것도 능사가 아니지 싶어서 두 분과 같이 가기로 하니, 여유있게 자고 일어나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이런 동행으로 움직인 건 정말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늘 그렇듯 아침을 먹고, 비행기 타기 전에 바코르를 한 바퀴 돈다며 새벽같이 나가는 전투식량팀에게 미리 작별인사를 하고, CH님도 떠날 기차가 10시라 서둘러 짐을 꾸리셨다. 기차역까지 택시를 잡아타고 가셔야 할 상황인데 마침 우리 셋이 간덴에 가려고 TGH에서 연락처를 알아둔 택시를 불러둔 참이라, 그 택시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셨다가 차가 돌아오면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전송을 하러 문 밖으로 따라나섰는데.
어머나? 정신차리고 보니 방사장님과 나 둘 다 택시에 타고 있네 -_-
그래서 기차역까지 따라가서 CH님을 전송하고 강을 구경하며 돌아갔다. 돌아가보니 창원 아저씨께서 어차피 오늘 낮에는 손님도 별로 없으니 맑은술님 혼자 계시라고, 방사장님도 모시고 가자고 꼬셔둔 참. 방사장님도 라싸에 와서 집에서 밥하고 살림하느라 지겹던 차, 희희낙락 모자를 쓰고 나왔다. 만세부르며 넷이서 다시 삶은 계란 꾸러미를 들고 출발!
바코르에서 간덴으로 왕복하는 버스를 타면 오고 가는 데 2시간씩 걸린다지만 (그것도 물론 출발한 후의 이야기. 차가 꽉 차야 출발하므로 시간은 대중없음) 택시로는 1시간 반이면 간단다. 라싸 시내를 벗어나서 달리기 시작하자 기분이 확 트이는 것 같다.
하늘이야 똑같겠지만, 라싸 밖은 어쩐지 공기부터 다른 느낌이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잘 달리다가 어느 순간 택시기사가 차를 멈췄다. 왜냐고 물었더니 (물론 중국어를 잘하는 방사장님이) 너무 빨리 달려왔단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라싸를 벗어나면 도로 여기저기에 검문소가 있는데,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시간을 찍어준다. 다음 검문소에 갔을 때 그 시간을 보고 너무 느리게 왔거나 너무 빠르게 왔으면 벌금행이라는 것이다. 느린 거야 다른 데로 셀까봐 그렇다 치고(점령지니까), 빠른 건 대체 왜?? 설마 저런 도로에서 과속 방지를?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잠시 멈춰서 노닥거렸다.
옛날 벽돌 공장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검문소에 갔는데, 아뿔싸. 검문소가 이사갔단다-_- 당황한 기사 아저씨는 이사갔다고 해둔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가는데 아무리 가도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내려서 길가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감감무소식. 결국 방사장님이 교통국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고는 괜찮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다시 간덴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7-800미터는 됨직한 언덕 위에 사원이 보인다.
올라가는 길도,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장관이다. 사진을 잘 보면 길이 엄청나게 구불구불 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차는 열심히 지그재그로 달린다. 능선을 가볍게 타고 다니는 양과 야크들은 직선으로 다닌다. 간덴사의 스님들도 직선으로 다닌다. 사원까지 닦여있는 길 말고는 건물도 없는 산인데(이 동네 기준으로는 물론 산이 아니라 초원에 해당하지만) 전신주만은 주욱 늘어서 있는 게 희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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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덴사. 달라이 라마의 본산 겔룩파의 최고 사원이다. 문화혁명의 파괴에서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들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크다. 산을 타고 지어진 도시 같다. 저 언덕 위로 줄줄이 보이는 건물은 대부분 승려들이 묵는 곳. 세라 사원과 종파는 같지만, 겔룩파는 개혁 종단이라 그런지 의식이 간소하고 소박하다. 기웃기웃, 맨 먼저 들어가본 곳은 커다란 법당 같은 건물. 점심 시간 즈음이라 사람이 없는데 알고 보니 강당이랄까, 젊은 승려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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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를 알아듣는 스님이 몇 없다. 아니 라싸에조차 가보지 못했다는 분이 태반이다. 다들 사람을 편하게 대한다. 단순히 장사속이 지나치다거나, 때가 탔다거나 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이곳 스님들에게는 라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가 있다. 친절하고, 관광객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눈이 마주치면 씩 웃어주는 것도 느긋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그게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런 사소한 것이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라싸에서 어두운 얼굴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일까. 법회를 시작하고 뒤에서 얌전히 법문에 귀를 기울이는데(유목민들의 전통 음악과 비스한 느낌이다) 나이 어린 승려들은 계속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건 거꾸로 우리가 구경거리가 된 셈이다.
갑자기 삐삐삐- 소리가 울리기에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가장 어려보이는 사미승 몇이 번개같이 달려나갔다가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돌아온다. 다른 스님들이 계속 법문을 읇는 동안 이들은 주전자를 들고 돌아다니며 찻잔에 차를 붓는다. 법문이 끝나고 일제히 찻잔을 드는 것을 보니,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바삐 다녔나보다.
차를 마시고 잠시 쉰 다음, 티벳 특유의 길쭉한 경전들을 날라다가 앉아있는 승려들에게 나눠준다. 가운데 줄에는 앞에 책상이 있고, 가장자리 줄에는 책상이 없어서 천 같은 것을 펴고 그 위에 경전 두루마리를 편다. 제일 마지막에 받는 것은 아까 차를 나르던 어린 승려들. 다른 스님들이 우리에게 신경을 끊고 공부에 열중한 다음에도 우리를 흘끔거리며 눈만 마주치면 웃어보인다. 경전을 읽기 시작했지만, 역시 이 사미승은 읽는 것도 엉터리, 대충 흉내만 내서 빨리만 읽어버린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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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지켜보다가 나와서 윗건물에 들어갔다. 슬그머니 들여다보니 어라? 여기는 나이가 어지간히 든 스님이 대여섯 분 앉아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다. 젊은 것들은 공부시켜놓고 휴식인가! 우리도 같은 마음이긴 했지만 가장 대담한 방사장님. 은근슬쩍 그쪽에 가서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지화자~ 스님들 옆에 쪼르르 앉았다. 야크버터차를 한 잔 얻어먹는 게 또 로망 아니겠는가. 뻔뻔함을 발휘하여 차 한 잔 얻어먹을 수 없냐고 했더니 그 중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스님이 조금 놀라더니 야크버터차가 아니라 티앤차(짱 아모)가 든 주전자를 들어서 차를 한잔씩 주신다. 뻔뻔함을 발휘하여 맛있게 얻어먹었다. 방사장님과 그 스님 사이에는 대화가 오가고 중국어를 못하는 창원 아주머님과 나는 가끔 통역해주는 말을 들으며 느긋하게 법당 안을 살피며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차를 마시다보니 배가 고프다. 슬그머니 계란을 꺼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계란을 권했는데, 앉아있던 스님 모두가 손사래를 친다. 아! 육식을 일체 안하는 거구나. 그래도 야크우유는 드시니 혹시나 했는데. 또 권해보니 커피도 안드신다. 이거 우리가 먹는 것만 해도 큰 실례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맛있게 계란을 까먹고, 마침 싸가지고 온 땅콩과 초콜렛이라도 혹시 싶어 내밀었더니 그건 받으신다. 가만 보니 이 분들 식단은 조그만 빵 같은 것에 야크버터차와 과일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화기애애한 간식 시간. 중국어를 하는 문제의 스님은 젠틀하고, 뒤늦게 들어온 (아마도 젊은 아이들을 감독하던) 스님은 중국어는 못하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장난을 걸어온다. 뒤쪽에서는 동글동글한 중년 스님 한 분이 벌렁 누워서 주무신다. 다른 스님이 살그머니 다가가서 장난을 쳐도 깨지 않는다. 지팡이를 짚은 노스님이 들어와서 합류한다.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법당 안 여기저기(영탑이 특히 자랑거리인 모양이었다)를 안내받고, 다른 건물까지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잠겨있는 문을 열어서 보여주기도 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굽신굽신. 대충 그러고 나니 아래쪽 공부시간도 끝난 모양, 나이든 스님들도 이제부터 할 일이 있는지 바쁘게 일어난다. 우리 상대해주느라 고역이셨을 텐데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얘기가 없었다. 타시뗄레(행운을 빕니다), 투제체(고맙습니다).
여기서 같이 논 스님들과 사진도 찍었지만 내가 들어있으니 생략-_-
해발 4000이 넘는 높이에 있으며 한 바퀴 도는데 약 2시간은 걸린다는 유명한 코라(참배로)도 한 번 돌아보고 싶었는데, 거기까지 올라가는 길만 보고도 의욕이 꺾인다. 택시기사는 우리가 사원 안에서 노는 사이에 그 참배로를 한 바퀴 돌았단다. 오호라. 역시 티벳 사람답다. (라싸의 택시기사는 대부분 한족이지만, 이 사람은 장족이었다)
다리마다 달쵸와 룽다가 겹겹이.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돌아돌아서 산 아래로 내려가는데, 사원에서 뭔가 사러 가시는지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던 스님 한 분이 벌써 아래에 도착해있다. 역시 스님들은 다 축지법을...? 중국어는 할 줄 모르는 분이지만 우리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행운을 빈다. 돌아가는 길. 가는 길에 한 번 자세히 보고 싶었던 다리 앞에 멈췄다. 라싸 부근에서도 보았지만 강변에, 다리에, 바위산에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만든 것처럼 달쵸와 룽다가 걸려 있다. 강은 생각보다 흐름이 빨랐고, 뒤쪽 바위산에서 제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참. 중간에 건너뛰었는데 간덴사에서는 물론 화장실도 갔었다. 당연히 여성용 따위 따로 없는 스님들 화장실이라 창원 아주머님과 교대로 문을 지켰는데, 들어가보면 문은커녕 칸막이도 없이 구멍이 뻥뻥 뚫린 위에 나무틀을 짜넣은 게 전부건만 놀랍게도 깨끗했다. 구멍을 깊게 파고 창문도 높이 뚫어놓아 그런가. 어지간한 수세식 화장실보다 쾌적했달까. 창밖 경치도 죽여주고 말이지(쿨럭). 이 화장실의 진가는 남쵸에서 만난 최악의 화장실 덕에 더 새록새록 새겨졌다는... 교훈: 어설픈 현대식보다 깨끗한 옛날식이 천 배는 낫다.
혹시나 해서 팁. 택시를 대절해서 간덴까지 왕복 400위안이었다. 네 사람이 나눠서 내면 그렇게까지 부담이랄 것도 없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관광객이 없는 시간에도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 마음이 맞는 사람만 있으면(그리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해볼만 한 듯. 점심거리는 과일이나 빵 등을 간단히 싸가는 것이 좋다.
다음날은 드디어 남쵸! 이 여행 전체, 이 모든 번거로움이 남쵸를 보기 위해 감수한 과정이나 다름없다. 간덴에서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다시 바코르에 나가서 같이 떠날 네 사람과 저녁을 먹고 준비물(주로 식량)을 좀 샀다. 9시 좀 넘어서 TGH로 귀환. 전투식량팀에게 얻은 C-Ration을 싸고, CH님이 주고 가신 손전등을 넣고, TGH에 묵는 다른 객이 빌려준 침낭을 묶고, 방사장님이 빌려준 조끼를 넣고... 가슴이 설레어 잠이 잘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