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으로 들어가는 공항은 라싸에서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떨어져 있다. 공항 앞으로 나가자 미니버스들이 '라싸! 라싸!' 외친다. 아무거나 잡아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민항에서 운영하는 큰 버스가 있었지만, 어쨌든 가는 곳은 똑같고 값도 같다. 포탈라궁 근방에 있는 종점까지 25위안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큰길로 나오자 보이는 포탈라궁. 구름이 없으니 하늘이 완전 합성같구나-_-
혹시나 고산증세가 있을까 싶어 막판에 예약해둔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는 포탈라궁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외곽 지역에 있었다. 계속 멈춰서 포탈라궁을 보고 또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길에 나가서 택시를 잡아타고, 적어둔 TGH(티벳 게스트하우스) 주소를 보여줬다. 기사가 조금 헤매더니 무사히 찾아갔다. 알고보니 군부대 맞은편이었다.
내려서 다시 경비 아저씨에게 주소를 내밀자 안쪽이라고 손짓을 한다. 작은 마당에 작은 스쿠터가 서 있고 빨래가 많이 널린 집이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건 나이가 좀 있는 아주머님. 꾸벅 서로 인사를 하고 나서야 젊은 남자분이 "혼자 찾아오셨어요?"라며 깜짝 놀란다. 알고보니 앞서 인사한 아주머님은 방금 도착한 손님이었고, 이 젊은 남자분이 게스트하우스 주인 맑은술님이었다.
주요 등장인물 1. (TGH는 서로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을 관습(?)으로 삼고 있다...) 맑은술님: TGH의 사장. 픽업과 예매를 비롯한 바깥 일 담당. 나와 비슷한 또래지만 파란만장한 과거(?)를 자랑하며, 정말 성격 좋은 분이다. 방사장님: TGH의 사장. 식사 준비를 비롯한 집안 일 담당. 조선족이심. 당차고 귀여운 분. 창사 아주머님(이하 CH님으로): 첫날 만났고, 나를 제외하곤 유일하게 혼자 오신 분이라 사흘 정도 같이 다녔다. 남편 되시는 분이 창사에 파견나와 계신데 홀로 여행을 감행. 라싸 도착은 나보다 며칠 빨랐으나 고산증세로 고생하셨다.
아직 침대 준비가 안되어 1층에서 빈둥거리며 점심 얻어먹고, 복숭아 얻어먹고, 수유차(혹은 야크버터차)도 얻어먹고 푸근한 기분으로 잡담을 하며 상태를 두고보았지만 두 시간 정도 지나도록 고산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들 첫날은 그저 쉬는 게 좋다고 했지만 이쯤 되니 좀이 좀 쑤신다. 침대가 나고 2층에 올라가서 잠이나 잘까 하고 있는데 마침 맑은술님이 상태를 보더니 나가도 괜찮을 것 같단다. 마침 CH님도 얼추 회복이 된 것 같아 나가보실 참이니, 둘이 같이 나가면 혹시 몸이 안좋아지더라도 힘든 일은 없지 않겠냐는 얘기다.
얼씨구나 하고 짐 챙겨서 튀어나갔다. 목적지는, 바코르에 갈까 하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미니버스로 바로 갈 수 있는 용왕담 공원. 포탈라 궁 뒤쪽에 자리한 공원이다. 이름은 보나마나 중국 측에서 붙인 게 분명하거니와, 공원 자체도 어쩌면 중국에서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
오~ 앞에서 볼 때보다 더 멋있다!
라싸의 상징 포탈라궁. 티벳의 종교지도자이자 정치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궁전이다. 백색과 홍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백궁은 행정기관, 홍궁은 종교기관이란다. 내부 관람이 쉽지가 않다보니 이거 겉모습만 멋있는 거 아닌가,이렇게 밖에서만 보고 안에는 들어가지 말까도 했지만 결국은 이틀이나 들여서 안에도 들어가봤다. 그건 또 다른 날의 이야기고.
012
이렇게 신이 나서 한 시간쯤 걸어다녔을까. 좀 쉬자고 공원 한쪽에 앉은 순간. 숨이 차오르면서 머리가 핑-돈다. 커헉. 이게 바로 고산증?! 머리가 아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얼굴이 하얘지니 CH님이 화들짝 놀라셨다. 잠시만 더 쉬면 될 거라는데 굳이 TGH에 전화를 하시더니, 조금 있다가 구두를 닦으라고 조르는 티벳 여자아이 두 명을 앞세워 약국으로 달려가셨다. (물론 표현이 그렇다 뿐이지 절대! 뛸 수는 없었다)
30분쯤 쉬었을까. CH님이 약국에서 돌아오셨을 무렵에는 거의 회복한 상태였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사다주신 홍경천(티벳에서 파는 고산증 약)을 먹고, 쉬엄쉬엄 천천히 숙소로 귀환.
TGH에서 찍은 저녁 하늘
이쯤에서 잠시 고산증에 대해. 라싸의 해발 고도는 3600미터. 산소가 이곳의 6-70퍼센트밖에 없다고 한다. 때문에 숨이 차서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건 나중까지도 기본이고, 실제로 고산증이라고 했을 때 증상으로는 심한 두통, 기침, 근육 당김, 소화 불량, 무기력증 등이 있다. 누구에게 나타날 지 아무도 모른다. 70 연세에 멀쩡한 분이 있는가 하면 운동 많이 한 청년이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나도 그래서 혹시나 적응이 안될 경우(걱정하는 나를 보며 지인들은: 왠지 넌 여기서 골골하니까 거기선 괜찮을 것 같아... 라는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사천성이나 볼 생각으로 성도-라싸 루트를 택한 것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2. 7일에 있다가 예약 때문에 8일에 우르르 다른 숙소로 옮긴 A팀, B팀, C팀이 있다. A팀은 20대 초반 남자 두 명이었는데 둘 중 하나가 고산증으로 주사를 맞고 내가 갔을 때도 자고 있었다. B팀은 일명 삭발 부부. 여자분은 약한 고산증으로 감기 같은 증상을 보이고 계셨음. C팀이 가장 특이한 3인조. 중국에 7년 정도 살아서 말이 유창한 여자+사촌동생, 고산증으로 주사 맞음+10년지기 친구, 설사로 포탈라궁 포기. 셋이 중국여행사를 통해 패키지로 왔으나 건강상 두 명이 나가떨어지며 스케줄 포기, TGH로 요양 들어온 경우였다.
헉헉. 8일에 들어온 다른 팀은 나중에 또 설명하고.
요는 이거다. TGH에 있던 팀 모두 한 명씩은 고산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는 것. 창사 아주머님까지 포함해서 어느 팀이나 도착 후 2-3일 동안 쉬기만 했다는 것.
그러니 아무리 증상이 없어도 내 체력을 과신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나중에 검토해본 바 다들 말하는 증상이 아니었고, 나중에 성도에서도 잠시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예전 규슈에서도 비슷한 증상을 보인 적이 있다는 걸 종합해보면 고산증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걱정하던 터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젠 열심히 몸을 사리는 모드로 돌아가서 저녁에 맥주도 패스. 당신 경험에 비추어 이만저만 걱정해주시지 않는 창사 아주머님 옆 침대에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전혀 증상이 없어서 매일매일 놀러다닌 건 물론이고 떠날 무렵에는 체력 좋다는 말까지 들었지 -_-v
그러하니 혹시나 고산지대로 여행가실 분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아무리 괜찮은 것 같아도 첫날은 쉬는 게 좋다. 열차로 오는 사람이 덜하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렇지도 않았다. 앞에 거론한 네 팀 다 육로로 이동했는데도 그 지경이었다. 예외라면 운남에서 중띠엔을 거쳐 버스로 들어온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경우 고산증으로 고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신 오는 길 자체가 개고생이다. 관광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초대소에 묵어야 하는데 밤에는 초대소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나간다고 한다. 화장실조차 못간다는 얘기다(...)
TGH에서 몸을 추스른 A팀, B팀, C팀은 사장님 커플과 팀별 고스톱 대항전을 벌여 그 돈으로 맥주 파티를 하고 다음날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