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오온천(타케오온센) 역은 아리타 역에서 20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사세보와 하카타를 잇는 미도리를 타도 갈 수 있고, 사세보에는 들르지 않고 하카타와 하우스텐보스 사이를 오가는 특급열차로도 갈 수 있다.
나는 사세보 역에서 미도리를 타고 갔다. 걸리는 시간은 43분.
타케오온천은 규슈에 처음 올레길이 생긴 마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책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2015년 12월 11일 날씨는 규슈 전역이 비.
일본의 날씨예보는 꽤 정확하다. 지도를 들고 우산을 쓰고 역을 나섰다가 어김없이 방향 감각 상실. 심지어 비가 예상보다 더 많이 오니 판단력이 떨어진다. 발이 젖어 비참해지기 전에 역으로 돌아가서 밥부터 먹고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타케오온천 역에서 파는 사가규(사가 소고기) 도시락은 2년 연속으로 규슈 에키벤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는 작품.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달달하게 볶은 불고기를 얹은 밥.
내 감상은, '하여간 없는 명소, 없는 명물이라도 만들어내는 데엔 귀신같지...'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맛. 하지만 가격이 1300엔이다. 이게 명물이 된 건 '에키벤'으로서지. 그냥 맛있는 요리를 먹겠다는 기대로 찾는다면 어떨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혈당치를 올리고 다시 생각해본 결과, 긴 산책 코스에 대한 욕심은 모두 버리기로 했다.
원래 여기에서 보고 싶었던 것만 추려서, 딱 두 군데에 들른 후 온천을 가볍게 하고 떠나기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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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타케오 마을도서관.
전국에서 견학삼아 보러 올 만한 새로운 명소로 만들었다는 소개글을 보고 궁금했는데, 과연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꿈의 도서관급! 올레코스에 포함되어 있진 않으니 걸으러 간다면 살짝 비켜서라도 꼭 볼 가치가 있다.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라, 문이 열릴 때 한 장 찍어서 아쉬움을 달랜다.
이 사진으로는 제대로 전하기 어렵지만 (도서관에서 파는 엽서라도 사오려고 했더니 경악스러울 만큼 사진이 형편없었다!) 내부가 정말 아름답다.
기본적으로는 북카페와 도서관을 합쳐놓은 형태인데, 여기에 서점의 기능 일부 + 마을 사랑방 역할 일부를 얹었다.
바로 입구에는 보다시피 판매용 책과 선물, 문구 등이 있고,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 창가에 놓인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고, 낮은 소리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을 감안하여 북카페 바로 옆에 여행서와 잡지 류를 배치해 놓은 듯, 노인 몇 분이 함께 여행서를 뒤적이며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만화책 코너와 어린이책 코너, 놀이방처럼 꾸며놓은 어린이 코너가 있고, 학술서는 대부분 안쪽에 있어서 소음이 어느 정도 차단된다. 2층은 책장을 등지고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며 노트북을 둘 수 있는 자리가 쭉 이어진다.
마시고 먹으면서 책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가방을 들고 들어가고 나오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믿고 운영하지 않으면 손해가 날 법한 시스템인데... 그만큼 마을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거겠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런 도서관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잠시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빗발이 좀 수그러들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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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목표는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타케오 신사 안에 있다는 3천살의 녹나무. 올레코스에 포함되어 있으니, 사전답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 규슈올레길을 걸으러 다시 가볼 생각이다)
제주올레에서 눈에 익은 간세를 여기에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서울보다 날씨가 따뜻하다보니 단풍이 한창인데 빗발 덕분에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고, 침침한 단풍나무길을 지나고 더 침침한 대나무길을 들어가니 녹나무가 보인다.
정말 거대한 것들은 사진에 담기지 않기 때문에, 당시에는 늘 실망하지만 나중에는 계속 '이 사진보다 더 좋았어'라고 기억을 되먹여야 한다. 아무도 없이 비오는 숲속에서 혼자 볼 수 있었던 덕이기도 하지만, 이 나무의 존재감은 그냥... 굉장하다. 신령으로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혹시 한국도 좀 더 다신교적인 가치관을 가졌다면 이런 아름다움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스키장 만들겠다고 원시림을 밀어버리고 귀찮다고 유적을 묻어버리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을까. 일본의 경우는 그게 관광-자본주의와 우연히 잘 맞아떨어졌다 치더라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지키기 위해 도로를 빙 돌아 깔던데 말이다.
어쩌면 예전에는 우리도 조금은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
늘 푸르다고 하여 녹나무라고 하며, '장뇌'의 재료라 장뇌목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제주도에만 자생하는데 그 향기는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 집 부근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날씨는 여전히 구질구질하지만, 도서관과 녹나무를 보고 나니 한껏 좋아진 기분으로 온천 누문(로몬)까지 걸어갔다. 온천이라고는 해도 오래된 목욕탕에 잠시 몸을 담갔지만, 물이 매끌매끌하니 좋다. 나중에 다시 오면 좀 더 제대로 된 숙소에 묵고 온천을 해도 좋겠다. 비가 너무 와서 포기한 호수며 다른 신령목들도 보고.
오후 늦게 다시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에 도착. 역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숙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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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 덧붙임)
도서관이 아름다워서 좋게만 보았는데, 이런 문제도 있었구나. 과연 이 도서관이 공공도서관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냐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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