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일어나서 여행자들 사이에 유명하다는 No.5 게스트하우스에 찾아가 10위안짜리 아침 부페를 먹고(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침 부페라는 말만 보면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숙소를 몇 군데 기웃거린 다음 창산 트레킹을 위해 No.3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 보이는 저 산이 창산이다
창산(蒼山)은 대리고성 뒤를 받치고 있는 산이다. 최고 봉우리가 4000미터를 넘으니 동네 뒷산이랄 수는 없겠고, 길이도 48킬로미터인 데다 19봉 18계곡의 산맥이란다. 고성 서문에서부터 말을 타고 산 중턱에 있는 중화사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창산 입장료가 30위안, 말 왕복 이용이 30위안.
요런 조랑말을 타고 간다
사진 뒤로 멀리서 분홍 잠바를 입은 애가 끌고 오는 백마가 보일 것이다. 내가 탄 말은 저놈이다;; 무리 중에 딱 하나 있던 백마... 아니 한 때 백마였을 황마(...)

말을 타고 사람없는 밭 옆을 지나 사람이 거의 없는 산길에 접어들어 1시간 정도를 올라간다. 가기 싫다고 투레질을 하던 백마지만 성질도 순한 편이고 중화사까지의 왕복이 익숙한 듯 했다. 그래도 엉덩이와 허리는 제법 아팠다. 말 주인의 어린 딸과 같이 타느라 더 힘들기도 했고-_-; 내려오는 길에야 겨우 좀 타는 요령이 생겨서 편해졌고, 내리고 나니 좀 섭섭하더라. 전날 중화사냐 간통사냐 묻기에 그 둘이 전혀 다른 방향에 있는 줄 알고 중화사로 간다고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중화사에서 다시 리프트를 타거나 말을 타고 더 올라갈 수 있었던 모양이다. 대리에 다시 가고싶은 이유가 거의 없는데 그것 하나가 아쉽다. 아무튼 중화사에 오르니 대리 시내는 물론이고 그 너머 얼하이호수까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중화사(中和寺). 아래쪽에 배불뚝이 부처님이 있긴 하지만 뒤쪽은 대부분 도교의 신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서 한 시간, 아니 한 시간 반인가 동안 오르락내리락 돌아보고는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난간 앞에 앉아서 삼도차를 마셨다. 대리의 특징이라고 적혀있던 차인데, 혹시나 하고 물어보니 여기에서도 판단다.
삼도차(三道茶)
조금씩 사이를 두고 찻잔이 나온다. 첫번째 차(맨 오른쪽)는 쓰고, 두번째 차(가운데)는 달고, 마지막 차(맨 왼쪽)는 오묘한 맛이 난다. 가이드북에서는 그게 젊은 날엔 고생을 사서 하고, 그게 지나가면 고진감래요, 마지막은 그윽한 맛이 인생의 황혼을 뜻한다고 설명해놓았다. 실제 먹어보니 첫번째 차는 과연 쓰고, 두번째 차는 계란 없는 쌍화차 같은 느낌이고, 세번째 차는 맛이 오묘하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번갈아 마시면 맛있는데 세번째는 첫맛이 괴상한지라 섞지 않고 계속 마셔야만 맛이 괜찮아진다. 베이스는 뭔지 모르겠지만 차에 치즈를 넣는 건 좀 악취미일 지도;; 다시 내려가는 길. 이번엔 내가 갈색 말을 탔는데, 이녀석은 나이가 어린지 힘이 딸리지 않는 대신 필요없는 곳에서 뛰는 경향이 있었다-_-; 아무튼 요령이 생겨서 그리 힘들지 않게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도 1시간 정도.
산을 다 내려가면 아담한 고성 서문- 일명 창산문이 보인다
이렇게 해서 이날 원래 생각했던 일정은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숙소 문제만 없었어도 오후에 또 외곽으로 나가거나 박물관에 갔겠지만, 시끄러운 숙소에서 하루 더 묵을 생각을 하니 끔찍해서 만두로 점심을 때우고(한접시에 3위안! 나이스 >_<!) 숙소를 보러 다녔다.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는 다 돌아봤나보다. 이것도 제법 재미있었다. 짐스 피스는 좋지만 비싸고, 티베탄 로지는 독특한 분위기지만 화장실이 별로고, No.4는 조용하고 싸지만 너무 외지고... 등등. 그러다가 마지막에야 아침을 먹었던 No.5로 돌아가서 방을 보고 바로 결정. 답은 언제나 시작부분에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S님(이 분은 나로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깎기 능력의 소유자였다!)이 값을 깎아서 90위안에 아침 포함으로 낙착을 보았다.
새로 옮긴 숙소 입구. No.5는 별칭 같은 것이고 실제 이름은 사계객잔.
숙소 옮기고 빨래 좀 하고 나니 벌써 해질녁이다. 만두를 먹어본 뒤 여행자용 레스토랑은 안가는 게 낫겠다는 무언의 합의를 이룬 S님과 나, 이번에는 만두집 오른쪽 두번째에 자리한 작은 식당에 갔다. 역시나 주문이 어려워서 진열해둔 재료를 가리켜서 시금치와 계란 볶음, 고추와 돼지고기 볶음이라는 무난하기 그지없는 반찬을 시킨 다음 볶음밥을 시켰다. 맛도 있지만 양이 무시무시하게 많았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랐던 것. 밥먹는 데 벽에 왠 사진이 잔뜩 걸려있나 했더니, 오며가며 중국 사람들이 식당에 들러서 사진을 보고 주인 아주머니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몇 번 번갈아보다보니 어라? 닮았네? 주인 아줌마가 왕년에 배우였다! 허걱.
증거 사진!
신기해하며 둘이 스토리를 마구 만들고(문혁 때 낙향해서 이런 허름한 음식점이나 하게 된 게 아니냐 등등) 즐거워한 뒤, 해가 저무는 가운데 서둘러 걸어가서 고성 남문 누각에 올랐다. 조금만 빨랐으면 일몰을 보았을 것을, 싶었지만 서서히 어둠에 잠기는 고성과 하늘도 볼만했다.
신용문객잔?!
돌아가는 길에 가게 구경 좀 하고, 얼하이호 배표 알아보러 다니고 등등 하고나니 벌써 밤 9시. 이날도 변함없이 맥주 한 병을 비우고 잠들었다. 낡은 집에서도 뒷마당에 자리해서 쥐죽은 듯 고요했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밤이었다. 문득 대리 시내에 막 도착했을 때 본 대형 바람개비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