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일요일.
전날, 하코네 패스를 사러 갔다가 들은 이야기 때문에 일정 변경이 있었다. 본래는 이 날 요코하마를 돌아보고, 월, 화에 닛코와 하코네를 볼 예정이었으나 7호 태풍 할룽이 화요일쯤 도쿄까지 올라온다는 일기예보에 닛코와 하코네를 앞으로 당겼다. 적어도 시내라면 비가 오더라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는 있을 테니까. 어쨌든 아침 6시 반쯤 일어나서 일기예보를 확인한 다음, 의논을 마치고 나서 숙소를 나서니 8시. 예정보다 늦다. 하코네라면 이 정도로도 괜찮지만 닛코는 도쿄에서 거리가 만만치 않은 교외였다.
닛코 국립공원은 도쿄에서 갈 수 있는 근교 관광지 중 제일 먼 곳으로 꼽히는 데다가 상당히 넓기 때문에 제대로 보려면 당일치기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어찌하리. 닛코에 이틀이상 할애할 여유는 없으니, 최소한으로 줄여서 볼 수밖에. 어차피 JR패스가 없는 우리. 특급을 타나 보통을 타나 시간차도 별로 나지 않는관계로 '닛코 미니 프리패스(도쿄와 닛코 사이 왕복열차+케이블카+닛코 버스 자유이용)'를 사서 2시간 5분 정도로 잡고 열차에 올랐다.

*닛코 미니 프리 패스. 의 겉껍데기. 이 날 하루, 사진은 꽤 찍었으나 풍경만 찍은 사진이 없는 데다가...날이 흐렸던 탓에 그나마 희생을 결심하고 스캔한 사진도 선명하지가 않다. * 차 안에서 내다보는 풍경이 제법 괜찮았다. 뭐, 알다시피 기차로 여행을 하면 여행 기분이 나지 않는가. 게다가 바깥에 보이는 빽빽한 나무들이 몽글몽글한 녀석들이라서 이국적인 느낌도 나고 ^^
......그러나, 그렇게 창밖을 내다보며 즐겁게 차를 타고 가다가 우리는 내릴 곳을 놓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놓친 것은 아니다. 앉아있다가 시계를 보고서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어찌 아직도...?'라고 생각하고서, 운행표를 보니 뭔가가 이상했고, 그래서 확인을 해보니 차 앞쪽과 뒤쪽이 갈라져서 각기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인 줄 몰랐던 거다!! 부랴부랴 그제서야 내려서, 다시 갈라지는 역까지 돌아가서 다시 가는 바람에 예정보다 1시간 오버. 12시 15분에 닛코역에 도착.
닛코는 국립공원이고 유명한 관광지인 관계로 물가가 비싸다. 게다가 열심히 돌아다니자면 점심도시락을 사가지고 가는 편이 좋다고들 했다. 역 바깥에 나가 보았다가 다시 역으로 들어가서 주먹밥 도시락을 두 개 싸들고, 12시 31분 버스(일본의 버스시간은 정말 정확하다;;)를 타고 신쿄로 향했다.
자, 여기서 다시 닛코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닛코를 보지 않고 멋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하는 닛코 국립공원은 폭포와 호수 등의 천혜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나라시대 말기에 세워진 절과 신사에 더하여, 에도 시대 도쿠가와 이에미쯔가 할아버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을 이곳으로 이장, 도쇼구를 세우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우리의 목표는 닛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쿄+린노지+도쇼구+후따라산진자와, 일본 3대 폭포 중 하나라고 하는 게곤노따끼. 이것까지만으로 일정을 확정하는 데에는 또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것은 생략하기로 하자.
어쨌든 그러한 관계로......
닛코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5분 후 신쿄 神橋 앞에서 내렸다. 뭐, 전설에 따르자면 나라시대 말기, 닛코에 불법을 전파하러 온 쇼도쇼닌 勝道上人이 이곳의 급류를 건널 수 없게 된 순간 부처님께 간구하자, 지나던 뱀이 다리로 변한 것이 이것이라고 하지만 물론 역사적으로는 1636년에 닛코의 영주가 만든 목조다리이며 그나마도 1907년에 불타버린 것을 다시 세운 곳(알고보면 일본에는 100년도 안된 복원건물 투성이다. 젠장. 우리나라는 2, 300년된 건물도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안된 곳이 널렸건만 일본은 100년도 안된 게 다 세계문화유산이다 --;; 어쨌든 이건 잡설이고). 나름대로 급류 위에 붉은 색 목조 난간이 제법 운치가 있...는 사진을 보고 기대에 차서 내렸으나, 이게 왠일인가. 공사중이 아닌가!
공사현장에 내걸린 사진 한 장 보고 곧장 린노지 輪王寺로. 닛코의 중심지인 이곳에는 린노지와 도쇼구, 후따라산진자, 뵤다이인 네 곳이 가까이 붙어있어 걸어서 한꺼번에 볼 만 하다. 게다가 원래 입장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대신(도쇼구만도 1300엔이다;;) 이 네 곳을 한꺼번에 묶어서 1000엔에 '니샤이찌지 교쯔켄'이라는 티켓을 판매한다.

* 니샤이찌지 교쯔켄. 이 종이 옆에 티켓용 종이 네 장이 붙어있어 갈 때마다 떼어내거나 표시를 한다. 티켓 자체는 참으로...헐빈하다;; * 이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방을 둘러싼 아름드리 거목. 솔직히 도쇼구도 린노지도 탐나지 않았으나 이 아름드리 나무들만은 부럽고 탐이 났다. 린노지 안에서도 감탄한 것은 역시 어마어마한 굵기의 벚나무. 크으~ 이런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허름한 건물이라도 절경으로 보이겠구만. 린노지는 輪王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밀교 사찰이며, 내부에 모신 세 존상도 명왕과 비로자나, 천수관음인 것 같았다. (뭐 확실한 건 아니니 따지지 마시길;;;) 불상 수준은 그렇게 뛰어나다 할 수 없는 평이한 수준이었다.
자, 그 다음은 닛코의 하이라이트, 압권, 도쇼구 東照宮!
이미 도쿄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도쇼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거니와, 같은 이름의 이 신궁은 똑같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시는 곳이다. 사실 도쇼구라는 건 결국 이에야스라는 '신'을 모시는 신사니까... 이 두 개 말고도 몇 개 더 있다 들었다;;
본래 이에야스는 시즈오까에 조용히 묻혔으나, 그 손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쯔가 본래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를 모시던 절 도쇼지에 무덤을 이장하고, 65만냥의 금과 100관의 은, 1만 5000명의 인력을 동원(안내책자 컨닝)하여 화려하게 단장하고 도쇼구로 개칭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퍼부은 금의 양만큼이나 화려하고,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멋이 있어서 과연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도 하다 싶은 생각이 드는 곳. 자, 우선 입구에 버티고 선 석조 도리이부터 압도적이다. 일본에서 제일 큰 석조 도리이라나. 그것도 양옆으로 아름드리 거목을 이고지고 있으니 한층 더 웅장해 보인다.
이 도리이 옆을 지나서 적당히 앉아 도시락부터 풀었다. 살 때는 급하게 사느라 몰랐는데 펴보니 대나무잎에 싼 삼각 오니기리. *.*

자, 이제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도쇼구 경내. 도쇼구는 불교의 사원건축+일본의 신사 건축을 혼합한 데다가, 중국식 건축/조각 양식까지 섞여 있어서 화려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섬세하다. 일단 경내에 들어가서 바로 보이는 것은 왼쪽의 마구간. 여기에는 말의 수호신인 8마리 원숭이 조각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눈을 가리고(보지 않고), 입을 막고(말하지 않고), 귀를 막은(듣지 않는다) 세 마리 원숭이 조각이 유명하다. 살아가는 처세술이라나;; 자, 그 다음으로 계단을 올라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색으로 단장한 400여개의 중국식 조각으로 뒤덮여 있으니...이것만 하나하나 뜯어보려 해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것이다. 사진은 있으나 친구들에게 칼맞을까 두려워 차마 올리지 못한다(...)
도쇼구 본당은......음. 별 인상이 없었나보군. 메모해둔 내용이 없다;;
본당을 보고 나서 다시 반시계방향으로 돌면 야꾸시도 藥師堂. 여기에는 나끼류 鳴龍 (용의 울음)라고 하는 특이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 건물의 천장이 특이해서 막대나 목탁을 세게 두드리면 울리는 음파가 매달아놓은 고리를 통과하며 나는 소리가 이렇다고...아, 이렇다는 게 어떤 거냐고? 설명하기 어렵다. 으음. 찡-하는 것 같은 느낌에 우-웅 하는 바람소리를 합쳐놓은 것 같달까. (표현력 부족;;;)
도쇼구를 뒤로 하고 후따라산 진자 二荒山神社로. 에 또...이 신사는 닌따이산의 신인 오오나무찌노 미고토 大己貴命을 모시는 곳으로, 도쇼구에 비해 고즈넉하기도 하고 건물도 몇 채 없다. 물론 이것만이 아니라 호수앞에 있는 건물이며 산 정상에 있는 곳까지 포함해서 큰 신사라지만......내부 건물은 그다지 볼 게 없었고, 사실은 도쇼구에서 신사까지 걸어가는 삼나무길이 멋있었다. ^^
그리고 마침내 뵤다이인. 처음에는 여행안내책에 나와있는 것과 이름이 달라서 린노지에 붙어있는 곳인가 했는데, 여기가 이에야스의 손자 이에미쯔 쇼군의 무덤이다. 흐음...안내책에는 이에미쯔 '뵤따이유인'이라고 되어있군. 발음이 틀렸구나. (......)
여하튼, 도쇼구와 상당히 비슷한 이 건물은 아무래도 할아버지를 신격화하고 만 관의 금을 쏟아부었던 손자답게도 규모가 좀 작고, 금도 덜 들어갔다. 제법 운치가 있는 계단을 지나 올라가니 단체 관광객이 없이 한산한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여기까지는 잘 오지 않는 모양이다. 뭐, 올라가서 보니 할아버지 때문에 소박하게 했다고는 하지만 번쩍이는 금빛은 만만치 않다. 조각이며 가람배치도 화려하고...문을 다시 나서서, 계단 아래로 늘어선 나무들을 내려다보는 풍광이 제일 멋있기는 했지만.
자, 이렇게 해서 사람이 만든 것들에 대한 관광을 마치고 자연풍광 쪽으로 이동. 그림으로 보기에는 평평하지만 이 네 곳이 몰려있는 곳도 나름대로 산 안인지라, 아래로 내려와서 정류장을 찾은 것이 3시 반이었다. 여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쥬젠지꼬 中禪寺湖 로 향하다. 뭐, 말이 쥬젠지꼬로 향했다는 거지 목표는 폭포 게곤노따끼였다. 우리는 닛코 패스를 이용했으니 관계 없었지만, 그리 먼거리도 아닌데 버스 요금이 만만치 않게 나오더군. 210엔인가부터 시작해서 정류장이 늘어날수록 요금이 오르기 때문에 정말......비싸다 --;
버스가 가는 길은 각도가 40도를 넘는 무시무시한 커브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산길. 길은 외길이요,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어서 멋있기는 하지만 어찌나 경사가 급한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이런 길을 30분 동안 가려면 운전사 실력도 장난이 아니어야 할 것이고, 타이어 마모도 장난이 아닐 게다. 양 옆으로 풍경이 제법 멋있었다 (...고 친구들이 말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초반에만 잠시 보다가 졸았다. 흠흠.)
어쨌거나 쥬젠지꼬를 따로 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곧장 게곤노따끼로. 99m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져내리는 물줄기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폭포보다 스케일이 크다. 게다가 비가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은 덕분에 물이 불어서,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져내리는 폭포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의 절경이었다. (아, 뭔가 고색창연한 말투;;) 물보라가 너무 심해서 아래쪽은 거의 보이지도 않고, 쏟아지는 물안개 주위로 새들이 날아다닌다. 옆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만 해도 치악산 폭포 정도는 됐다. (...)
2층으로 되어있는 전망대에 붙어서 폭포를 들여다보다가 주위를 거닐어 보니 이런저런 과자를 팔고 있다. 디스플레이가 귀여운 데다가 하나 사먹어 보니 맛있었다. E양과 G양(본인 희망으로 K에서 G로 바꿈)은 각각 쵸콜렛 모찌와 딸기맛 모찌 한 상자씩을 샀다. 나도 상당히 혹했으나 일주일이나 들고다닐 생각이 없는 관계로 포기. 셋이 돈을 나누어 내서 딸기맛 모찌를 하나 사서 먹어보니......오오, 일본인들은 과자를 정말 잘 만드는구만. ^^
폭포를 보고 다시 내려가서, 5시 10 분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아까와는 다른 길이었지만 역시 놀이공원을 방불케 하는 어지러운 커브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닛코역으로. 서두른 게 유감스러울 정도로 쉽게 6시 차를 타고 도쿄로 향하다. 뭐, 일찍 탔다지만 그래도 도쿄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곧장 오오츠카역까지 가서, 배고픈 김에 역 앞 체인점에서 파는 오야코동을 먹었다. 흐음. 여기에서 알았지만 일본은 식권 자동판매기를 쓰고 카운터를 없애는 음식점이 꽤 있다. 이 체인점도 그런 곳이었다. (사이버펑크 영화에 꽤 나온다. 그 경우에는 아예 모든 게 기계처리인 경우가 많지만 ^^) 나름대로 시간 절약, 공간 절약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참......
어쨌든 제법 먹을 만 했다. 얼음 녹차를 몇 잔 마시니 녹초가 된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밥을 먹고 나니 원기 회복. 숙소 돌아가는 길에 있는 100엔 샵에서 다음날 아침에 먹을 밥(햇반처럼 되어있는)과 음료수 등을 사고 들어갔다. 미리 말해두자면, 우린 절대 아침을 거르지 않는다. 거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여행 중에는 많이 돌아다니는 만큼 아침을 든든히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의. 미리 의논해서 3분 카레와 김도 싸온 참이었다. 15일과 16일 아침은 그렇게 해결했다.
이 날도 맥주 한 잔 하지 않고 잠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