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여름. 돈은 없고 체력은 아직 좀 있고 대충 먹고 열심히 돌아다니던 시절.
이때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 다시 가고 싶었던 곳들이 있고, 별 인상이 남지 않은 곳들도 있고, 별로 다시 가고 싶지 않아진 곳도 있다. 그러나 한 번, 기껏해야 며칠 스쳐지나가면서 남긴 인상이라서 믿을 만한 건 못되지 싶다. 특히 뮌헨을 다시 갔을 때 얼마나 달랐는지 생각하면 그렇고, 가장 좋은 인상으로 남은 런던과 마드리드가 4일씩 머문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길게 머물수록 보이는 게 다를 거라고도 생각한다. 좋았던 도시는 다시 가도 좋고, 그저 그랬던 도시도 다시 가서 좋을 때가 있으니 결국 어디든 좋다.
6월 30일 서울 출발. 오사카 1박
7월 1일 - 7월 4일 런던 : 놀랍게도 3박 4일 내내 날씨가 좋아, 아직까지도 런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음식은 정말 맛이 없었고, 돈 없어서 유학생들이 꾸리는 민박집에 묵은 덕분에 희한하기 그지 없는 양배추 김치를 맛봤던 기억이 강렬하다.
7월 5일 - 7월 6일 브뤼셀 : 유로라인을 타고 해협을 건넜고, 상업 도시라서 별 인상 없이 지나갔다. 술과 미식의 도시라는데 그럴 돈은 없던 시절이니.
7월 6일 - 7월 7일 암스테르담 : 자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으나, 그다지 놀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서 아쉽게 보낸...(...)
7월 8일 뮌헨 : 어쩐지 음침한 도시로 기억되어 있었는데, 2012년에 다시 가보니 좋기만 하더라. 대합실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호프브로이에서 맥주 마시고 노래하던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7월 9일 잘츠부르크 : 비가 내린 기억만.
7월 10일 - 11일 프라하 : 요새도 그런가 모르겠는데, 그때는 유럽연합이 아니라서 국경 넘을 때 군인들이 살벌한 분위기로 여권을 검사하며 돈을 갈취했더랬다. 다시 가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지만, 내 여행 인생 통틀어 유일한 소매치기(내가 아니라 동행이 당했지만)도 당한 도시.
7월 12일 - 13일 부다페스트 : 아주 아름다웠지.
7월 14일 - 15일 비엔나 : 숲이 아주 좋았고... 최악의 민박을 경험했다. 나중에 프랑크루프트에서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관광 도시라기보다는 살기 좋은 도시가 아닐까. 친구가 비엔나에 살게 되어 2017년에 4박 5일 다시 묵으며 현지인 코스프레를 해보니 확실히 살기 좋은 도시였다.
7월 16일 퓌센(노이반슈타인 성) : 그때는 아직 유럽 성에 대한 로망도 있고 그랬지. 어쨌든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기억은 있다.
7월 17일 하이델베르크 : 퓌센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던 성과 도시.
7월 18일 베네치아 : 스쳐 지나갔고, 너무나 좋아서 언젠가는 다시 가서 묵어보고 싶었다. 2012년에 4박 5일 묵었지만 여전히 또 가도 좋을 것 같은 도시.
7월 19일 나폴리 : 동네에서 너무나 맛있는 피자를 먹었던 기억으로 남은.
7월 20일-21일 로마, 바티칸 : 로마와 바티칸에 대해서는 좀 실망했던 듯.
7월 22일 피렌체 : 박물관 기다리는데 너무너무 더웠던 기억만 확 떠오른다. 심지어 박물관 안도 냉방을 하지 않아 더웠지. 냉방 막 돌리지 않는 게 유럽의 장점이긴 한데, 이탈리아는 그러기엔 좀...?
7월 23일 - 26일 루체른, 인터라켄, 라우터브루넨 : 스위스에 대해 크게 남은 감흥이 없다. 설산은 나중에 운남과 티벳과 네팔에서 본 설산이 훨씬 강렬했고. 물론 다시 가면 다른 게 보이겠지만.
7월 27일 니스 : ...인생 첫 인종차별 경험의 추억.
7월 28일 모나코 : 그랑카지노 앞에 늘어선 온갖 비싼 차들 사이에 당당히 서 있던 소나타가 아직도 떠오른다.
7월 29일 - 30일 바르셀로나 : 매우 좋았다.
7월 31일 - 8월 1일 마드리드 : 심지어 더 좋았다. 이때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두 도시를 꼽으라면 마드리드와 런던이었다.
8월 2일 - 8월 5일 파리 : 냉방이 고장난 야간 기차로 시작해서 이상한 호텔 (여)주인과의 싸움, 노숙 등 다양한 경험의 종합세트였고, 재미있었지만, 그다지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8월 7일 도쿄, 8월 8일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