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티벳(정확히는 남쵸)에 가고 싶어진 건 작년 겨울이건만, 늘 그렇듯 한 시즌 뒤에 가게 되었다.
티벳과 시베리아를 놓고 고민하다가 4월쯤 결정을 내리고도 꽤 조마조마했다. 티벳은 현재 중국 식민지이지만 세계적으로는 독립적인 성격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라 나름 이런저런 통제가 있다. 외국인이 들어가려면 허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딱 내가 결심한 무렵에 미국인 여행자들이 남쵸에 올라가서 티벳독립시위를 했고, 그 때문에 개인에게 허가증을 내주는 것을 막았다. 덕분에 혹시나 못들어가나 싶어 마음 졸이다가 6월경 다시 상황이 풀렸다.
정작 들어가고 나서는 분위기가 별로 그렇지 않아서 맥이 빠졌지만, 나오고 나서 보니 허가증이 또 막혔단다. 칭짱열차표는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고, 비행기로 들어가려면 허가증이 반드시 있어야 하니 참 쉽지 않은 곳이다.
7월 6일. 오후 비행기로 일단 향하는 곳은 인천에서 4시간이 걸리는 사천성 성도. 라싸로 바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없기 때문에 성도에 가서 하루 묵고 다시 라싸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사실 이 중국국제항공편도 예약하기가 쉽지 않아 식은땀을 흘렸건만, 정작 비행기에 타고 보니 자리가 텅텅 비었다. 다들 캄보디아 사태 때문에 취소한 걸까?
오후 비행기라 도착하고 할 일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숙소를 예약하면서 미리 변검 공연 예약을 해두었다.
내가 가야 하는 촉풍아운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옛 거리
미리 예약해둔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샤론 88에 짐을 풀고, 설명 듣고, 라싸행 비행기표와 허가증을 받고 부랴부랴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상해에서 여행온 한국 여자애 네 명도 같은 공연을 보는데 아침에 표를 다 못줬다며 나한테 두 장을 더 들려주더라. 성도는 인구 천 백만, 서울과 같은 규모의 대도시이자 파촉 시절부터 큰 부침없이 이어져온 고도(古都)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깨끗하고 질서도 잘 지키는 데 조금 놀랐다. (나중에 보니 상해에서 살다 온 그들은 이곳 차들이 차선을 잘 지키는 데 놀라더라) 이번 주목적은 티벳이라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다시 보러가고 싶은 지역이다.
매표소 앞
문화공원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공연장이 나온다. 제일 좋은 앞열은 아니고 그 다음 열을 부탁했는데, 정작 들어가보니 엄청 가장자리의 안좋은 자리를 안내해준다. 좌석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항의했더니만 안내인이 쩔쩔매다가 결국 실토하는 바. 서양 사람들이 우리보다 비싼 값에 같은 A석을 샀기 때문에 그들에게 좋은 자리를 줄 수밖에 없다는 것. 좌석이 꽉 차서 별 수 없이 가장자리에서 봐야 했다.
경극이라는 말은 북경의 전통극, 사천의 전통극은 천극이라고 한단다. 촉풍아운의 공연은 1시간 반 동안 차따르기, 곡예, 그림자극, 인형극 등 다양한 천극을 모아놓는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특히 유명한 '변검' 공연은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10분인가 정도밖에 안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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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사진으로 올린 변검이나 인형극도 좋았지만 의외로 가장 경이롭고 재미있었던 건 그림자극이었다. 사람 손으로 그런 재주를 부리다니. 상대적으로 서양인들이 감탄하는(...) 덤블링이나 점프 곡예는 이제까지 봐온 게 있다보니 싱겁더라. 우리가 산 표값이 120위안인데, 한국돈으로 환산해서 만 오천원 가까운 값에 넘치는 공연은 아니었다. 늘 그렇듯 최대한 즐기며 보긴 했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점프나 난타 보는 게 훨씬 낫달까.
어쨌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이런 입문용 (혹은 관광객용) 공연 말고 제대로 된 변검을 보고 싶다.
1시간 반 공연 보고 숙소로 백. 씻고 다시 짐 꾸리고 나서 자기 전에 맥주 한 잔.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공항으로 달려가야 하는지라 12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사천성에 와서까지 계속 둔해져 있던 마음이 다음 날을 생각하자 조금씩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