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남유럽
블레드, 2012년 6월 29일
askalai
2013. 2. 7. 11:52
2012년 6월 29일.
드디어 감옥방을 뒤로 하고(...) 시외버스를 타고 북쪽 블레드로 올라갔다. 아침에 출발해서 점심 전에 도착.
인구 만 명의 블레드에는 섬과 성과 호수가 있다. 이름은 다 블레드다. 블레드 섬, 블레드 성, 블레드 호수... 블레드 성이라고 하면 뭔가 드라큘라라든가 드라큘라라든가 생각이 나지만, 드라큘라 백작의 고향 루마니아는 훨씬 남쪽이고~ 여기는 엄연히 알프스 남단의 호반 도시!
블레드 호수. 왼쪽 위에 보이는 것이 블레드 성.
류블라냐도 예뻤지만, 탁 트인 호수를 보니 마음이 시원하다. 그러나 숙소는 역시나 헤매고 헤매서 찾았다. 아니 왜 언덕 위에 숨어 있어서 지도를 봐도 모르게 만드냐고.
(이름은 Gorenka)
하지만 그런 곳이어서 가격 대비 시설이 마음에 드는 곳이었지. 무선 인터넷도 잘 되고, 딱히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간섭도 없고. 단점은 딱 하나, 숙소 자체가 꽤 오래된 집을 개조해서 만든 민박이다보니 샤워 시설은 낡은 공동 욕실 하나밖에 없었던 것 정도. 그것도 다른 투숙객들과 별로 사용 시간이 겹치지 않아서 그럭저럭 넘어갈 만 했다. 발칸에서 묵은 숙소 중에 가격과 시설 자체만이 아니라 관광지와의 거리까지 고려하면 여기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어쨌든 하도 헤맸더니 숙소를 찾은 후에 잠시 드러누웠다가, 씻고 나가서 조금 늦은 점심 겸 저녁. 슬로베니아 식이라는 소시지도 맛있었지만 (독일보다 덜 짜다!) 라자냐가 무지 맛있었다 츄릅...
점심 먹고 오후 늦게는 배를 타고 호수 중앙에 있는 블레드 섬으로 갔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게 섬인데, 섬 꼭대기에 교회가 있고 교회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99개다. 흠, 교회가 차지하고 있으니 멀쩡한 중세 유럽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슬라브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여신을 모시던 흔적이 있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관광객이 열 명 넘게 모이도록 기다려서 배를 탔을 뿐이고... 아저씨가 힘자랑하며 노를 젓다가 가면 갈수록 얼굴이 시뻘개진다 크...
같은 배에 몸매 좋은(죄송) 일본 언니가 어머님과 함께 탔는데, 붙임성이 좋고 귀여워서 같은 배에 있던 서양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모았다. 그리고 충격! 섬에 도착하고 나서 이 언니는 호수에 뛰어들어 헤엄을 쳤다지. 옷 안에 미리 비키니를 입고 있었어 오오 -0-
수영을 안좋아하기도 하고, 가서 하고 싶어지면 가서 사지 뭐 하고 수영복을 안가져갔는데, 발칸반도 한 바퀴 돌면서 아름다운 물가 어디보다도 여기에서 아쉬웠다. 이 호수만큼은 진짜 들어가보고 싶었다. 으으. 그냥 바지 걷고 발만 퐁당퐁당. 흑.
섬을 빠져나와서 저녁에는 블레드 성으로 올라가보았다. 원래는 그냥 좀 가보다가 힘들면 말지? 그러고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물이 없어서 물 사려고 100미터 이상 돌아갔다가 재도전. 이게 가파르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만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오기가 나서 헉헉거리며 끝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에는 내가 또 왜 이런 짓을 할까 싶었지만 다 오르고 나니 진짜 가길 잘했다 싶더라. 성 자체도 좋지만 내려다보는 풍경이 기가 막힌다.
해질녘, 성에서 내려다본 호수 전경.
무슨 행사를 하는 건지, 주민들이 중세풍으로 코스프레-_-를 하고 민속춤 같은 걸 추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으악! 여기 찻길 있잖아! 저 사람들 다 차타고 편하게 올라온 거였어! ㅠㅠ' 울어놓고서는 그 길로 따라가다가 아니나다를까 호수 반대편으로 잘못 빠져서 조용한 마을 구경 좀 하고, 겨우 다시 길을 찾아 호수가를 빙 돌아서 2시간 가까이 걸려 귀환. 이쯤 되어서야 겨우 어두워지면서 불빛이 하나 둘 켜진다. 성에도 불을 켜고.
다음날. 아침은 슈퍼에서 사다가 먹고,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호수를 보며 커피와 블레드 특산이라고 동네방네 선전하던 크림케익을 먹다.
정식 명칭은 '크렘나 레지나kremna rezina'.
으음. 류블라냐에서 먹었던 디저트보다 못하다. 역시 관광지에서 선전하는 음식이란 게 그렇지.
낮의 호수를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출발. 이번 목적지는 좀 멀다. 남쪽,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어쩐지 음식 사진에 더 기합이 들어가 있다고 느끼신다면, 그것이 사실...은 농담이고. 풍경은 크기를 줄여놓으니 느낌이 확 약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