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20코스
2015년 10월 9일
김녕서포구 -> 김녕해수욕장 성세기해변 -> 김녕해안길 -> 동부하수처리장 -> 월정밭길 -> 월정리해수욕장 (6.2킬로)
-> 쑥동산 -> 행원포구 -> 구좌농공단지 -> 좌가연대 -> 한동리계룡동정자 -> 평대리해수욕장 -> 평대옛길 -> 세화포구 (15.5킬로)
-> 세화리해수욕장 -> 제주해녀박물관 (16.5킬로미터)
(전날 19코스를 남흘동에서 끊었기에 거기부터 해서 600미터 정도 얹어서 걸었다)
전날 사둔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성산 카페 코지의 쑥식빵이었는데, 어지간한 홍대 빵집 못지 않다)
다시 701번을 타고, 40분쯤 걸려서 남흘동 도착. 조금 걸어가자 20코스 출발점이 나온다.
김녕은 곳곳에 금속벽화와 설치미술품이 있어 보는 맛이 쏠쏠하다. 아직은 조용하기도 하다.
전날의 경험을 교훈삼아 괜히 카페에서 맛없는 커피를 사먹을 생각을 버린 터.
마침 성세기해변에 편의점이 하나 있어 캔커피를 사먹었는데, 카운터 옆에 귤이 놓여 있기에 물어보니 성산에서 보던 가격보다 싸다.
주인 아주머니의 할아버지(...내가 맞게 들었나?)께서 작게 하는 귤밭에서 나온 노지귤이라고, 싸게 판다고.
완전 맛있었음. 이런 게 걷다보면 느끼는 행복이지 -_-b
김녕 성세기 해변쯤부터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해서, 코스 후반까지 계속 보인다.
눈도 즐겁고, 사진도 아름답다.
가게 옆 작은 카페에 올망졸망 놓인 화분과 장식품이 모두 해녀들이 쓰는 물질용 공 같아서 더 눈길이 갔다.
한들한들 바닷길을 걷는다.
그러니까 이게 진짜 성세기해변
바다를 살짝 벗어나서 걷는 길도 환상적이다.
다시 바다가 나오고, 조각품도 나오고.
바다, 풍력발전기, 억새, 사람 없는 길. 올레길의 행복
신기한 건물이 있네 싶었더니 에너지관리기술연구원. 디자인이 어울리는 듯도 하고.
조금 더 걸으니 월정해변이 나오는데, 여기에선 가려던 식당이 있었지.
...숙주고기볶음이 맛있는 집이라고 해서 이렇게 예쁜 신식 식당일 줄은 생각 못했지만!
그래도 갔으니 먹기로 한다.
점심으로 판다던 숙주고기볶음은 메뉴에 없었다. 할 수 없이 흑돼지목살구이 2인분을 시켰는데, 돌판에 숙주와 김치를 같이 올려준다.
맛있음...!! 싼 집은 아닌데, 구워주는 서비스도 그렇지만 모든 재료가 질이 좋다.
고기와 숙주, 김치, 반찬은 예상 가능했지만 쌈장이 굉장히 맛있어서 놀랐을 정도.
한라산 한 병 시켜 나눠먹으며 고기 2인분 먹고 배는 부른데 호기심을 못이겨 볶음밥도 1인분 주문.
메뉴에 오코노미야키식이라고 써있더니, 진짜 오코노미야키처럼 만든다.
소스 엄청나게 뿌리고 가다랑어포를 미친듯이 뿌리더니만, 한입 뜨는데 밥맛은 별로 안나고 소스와 가다랑어포의 향연.
이렇게 점심 먹는 데 두시간은 잡아먹었나보다. 진정한 놀멍 쉬멍 ㅎㅎ
천천히 먹고 배부르고 취기 도는 발로 허청허청 나가보니 월정해변이 눈이 부시다.
포토제닉으로 꼽을 만한 오징어
얕은 바다에서 개가 뛰놀기에 한참 봤는데 조금 있다가 보니 바다로 걸어들어가는 근육질 썬탠남이 주인이었던 모양.
좀 더 걷다보니 해변에 일행인가 싶은 썬탠하는 여인들이 셋인가 넷인가... 아, 전원 색목인!
정작 유럽이나 미국엔 그렇게 몸매좋은 사람들이 해변에 드러누운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정체가 뭘까.
월정해변은 어찌 알고 자리를 폈을까... 괜히 생각해본다.
소란스러운 구역을 지나서 조금 더 걷다보니 그림같이 풀뜯는 말이 보이네.
사진을 찍고 보니 옆에 기수가 같이 쉬고 있었다. 경주마? 승마용 말?
행원포구를 지나서는 길이 다시 논밭과 마을 쪽으로 들어가는데, 유난히 당근밭이 예뻤다.
바람이 불어주니 논밭길도 좀 덜 힘들고.
오후 네시쯤인가, 네시 반쯤인가 세화포구 도착.
점심을 하도 든든히 먹어서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아예 저녁을 가볍게 때우기로 하고 세화오일장 앞에 있는 은성식당에 들어갔다.
배가 고프진 않고 먹어보고는 싶어서 혹시 한 그릇 주문도 되냐고 물었던 건데 아주머님 양 많이 주심...
아니 저희 그 정도로 돈 없는 건 아닌데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일부러 많이 주신 거라 고기국수 또 남김없이 먹었다. 크흑.
전에 제주에서 먹었던 고기국수와 다르게 이건 진짜 진하게 고아낸 돼지국밥 국물에 국수를 만 느낌.
세화리 해수욕장은 또 카페가 늘어섰는데, 하루종일 당근밭도 많이 본 김에 유명하다는 당근케이크를 한 조각 사서 돌아가려 했더니...
안타깝게도 당근케익은 3시쯤 동이 났다고.
그냥 터덜터덜 언덕길을 오르니 20코스 끝인 제주해녀박물관이다.
여기에도 701번 정류소가 있는데, 금방 온 버스는 성산에 서지 않는다.
예상을 깨고 1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겨우 탈 수 있었다.
총평. 제주시와 성산 사이, 그러니까 16코스부터 21코스 사이에서 20코스가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적절히 바람부는 날씨가 걷기 좋기도 했고 코스도 많이 힘들지 않아서 더 그런 듯. 다 좋지만 특히 한 군데 꼽으라면 김녕. 월정과 세화는 과연 인기 있을 만 하다 싶게 아름답지만 조용하지는 않다. 특히 월정해변은 점점 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어 월정 까페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라,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여름에 어떨지도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