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2] 벳부 지옥순례
2월 5일. 일어나서 전날 사둔 커피우유만 마시고 바로 숙소를 나섰다. 벳부의 관광명소인 지옥순례를 하기 위해서다. 어디선가 줏어들은 정보를 인용하자면, 1200년 전 쯔루미오까 폭발로 인해 벳부에 뜨거운 증기와 흙탕물이 분출되기 시작했는데 지하 300m에서 증기와 흙탕물이 분출하는 모습이 지옥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지옥순례'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솔직히 '지옥'이란 표현은 과장이지만... 그렇다 해도 한번쯤 볼 가치는 있었다.
총 아홉 개가 있으며, 입장료는 하나당 400엔, 공통 입장권은 2000엔이고 벳부 1일 버스권(900엔)이 있으면 10프로 할인해준다. 1일 버스권은 전날 사뒀고, 버스에서 내려서 제일 먼저 보인 시라이케 지옥에 들어서면서 공통 입장권을 샀다. 보통 관광코스에서는 제일 유명하고 큰 우미(海) 지옥부터 돌게 되어 있지만 우리는 반대쪽에 있는 시라이케(白池) 지옥부터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거꾸로 인생이다.
시라이케 - 흰 연못 지옥. 연못에 떨어진 물이 청백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수온은 95도. 온천수를 이용해서 키우고 있는 열대어는 그냥 그렇지만, 일본식 정원처럼 꾸며놓아 돌아보기 좋았다. 막 문을 연 참이라 아직 관광객도 별로 없었다.
시라이케 지옥을 돌아보고 나가면 바로 맞은 편에 킨류(金龍)- 금룡 지옥이 있다. 새벽 동이 틀 때 솟아나는 뜨거운 증기의 모습이 마치 황금색 용이 하늘을 나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라는데, 그건 못봐서 모르겠고 안에 만들어놓은 용 조각상은 상당히 어이없었다. 세련미와는 백만광년쯤 떨어져 있달까... 나머지 지옥은 대표격인 '우미 지옥'에 끼워파는 상품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냐고? 어설프다는 면에서.
하지만 그 촌스러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시라이케 지옥이나 카마도 지옥은 우미 지옥 못지 않게 좋았으니 말이다... 단순히 금룡 지옥은 볼 게 별로 없었다고만 해두자.
그 다음은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자리한 오니야마(鬼山) - 도깨비산 지옥. 온천열을 이용하여 악어를 키우고 있으며, 안에 역시나 촌스러운 도깨비상이 몇 개 있다. 흐음. 솔직히 콘크리트 사육장에 갇힌 악어들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사진찍을 마음도 안생겼다.
그리고 다음이 카마도- 가마솥 지옥. 시라이케와 함께 베스트로 꼽을 만한 곳이다. 지옥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로 밥을 지어 신에게 바쳤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라는데, 여섯 개의 연못 색깔이 온도가 오르내림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푸르게, 낮아질수록 붉게.
입구에 이런 가마솥이 있다. 직접 보면 훨씬 더 촌스럽다;
물색은 탄성이 나오게 예뻤다.
불그스름한 못. 진흙이 꿀럭꿀럭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작은 신사가 보인다.
만쥬와 온천계란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만쥬는 그냥 평범했다. 사실은 만쥬도 온천계란도 아니고 같이 마신 커피우유가 제일 맛있었다는 허무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천물로 삶은 계란이라고 하면, 이걸 먹으면 장수한다는 뛰어난 상술의 표상... 몇년 전 하코네에 갔을 때는 큰 생각 없이 먹을까 했었으나... 비바람 때문에 화산지대까지 못올라갔더니 오히려 꼭 먹어야겠다 싶어졌다. 맛은 뭐, 그냥 삶은 계란이다. 슬프게도 이때 온천계란을 먹은 게 소화가 잘 안되어 후쿠오카로 떠나기 전에 맛있는 타꼬야끼를 한 번 더 먹으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덕분에 이제 다시는 온천계란을 부르짖지 않게 될 듯 싶다 -_-;;
어쨌든 먹고 식은 온천물에 손 씻고 나서서, 다음은 야마(山)- 산 지옥. 증기와 온천열을 이용하여 열대 식물, 동물을 키우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바나나라든가 꽃들은 그나마 온실 속이라 괜찮은데, 하마와 홍학 같은 애들은 좀 불쌍했다. 땅과 물이야 따뜻하겠지만 찬바람까지 고향같을 수 있으려고.
그리고 이쪽 코스의 마무리로 우미(海) - 바다 지옥이다. 가장 넓으며, 물색 때문에 바다 지옥이라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넓은 연못이 있고, 그 주위를 이런 식으로 공원처럼 꾸며놓았다. 화산분출 이후 고인 못이라 물이 따뜻하다고 한다. 펄펄 끓는 '지옥'은 위쪽. 섭씨 98도라 바구니에 계란을 담아서 넣었다 빼면 반숙이 된다는데, 아쉽게도 시연은 못봤다.
우미 지옥을 본 다음 시라이케 지옥까지 다시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나머지 두 지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통 8지옥을 도는 데 넉넉잡아 두시간이라는데 어째선지 우리는 벌써 3시간이 넘었다. 하하.
아무튼 나머지 두 개는 가볍게 볼 수 있었다.
다쓰마키(龍H) - 소용돌이 지옥. 조용하게 끓어오르던 열탕이 25분마다 20미터 이상 공중으로 치솟는 모습이 용이 승천하는 모습같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단다. 수온 150도의 간헐천으로, 물이 솟기를 기다려 관광객들이 일제히 사진을 찍어댄다. 이쯤 왔을 때는 이미 관광객이 상당히 많아져 있었다.
치노이케(血の池) - 피연못 지옥.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천연온천이라고 한다. 산화철을 포함한 점토를 품어내기 때문에 새빨간 색인데, 이 진흙으로 피부병 연고를 만든다고.
이렇게 여덟 개를 돌았는데, 나머지 하나인 혼보즈(대머리) 지옥은 추가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공통 입장권에는 아홉 개 온천이 다 들어가 있었다. 그 사이에 변한 건지, 아니면 추가 입장료를 내는 게 맞는 건지... 어차피 벌써 네 시간 가까이 지났으니 거기까지 가볼 여유도 없었지만.
왜 시간 문제로 서둘렀는고 하니, 숙소 체크아웃 시간이 원래 10시인데 12시까지만 짐을 놔두겠다고 하고 나갔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찾아 나와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삶은 계란을 먹고 소화가 안된 상태로 버스를 탄 게 문제였을까. 속이 부대껴서 철렁했다. 낫지 않으면 후쿠오카로 어떻게 갈 것이며 그 다음은 어쩐단 말인가...
다행히 약을 먹고 버스에 올라 내리 잤더니 상태가 좋아지긴 했지만, 이 일 때문에 갈수록 체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예전엔 챙겨간 구급약을 고스란히 들고 왔는데! -_-
아무튼 그래서, 히로시마로 가기 위해 들러야 할 도시, 후쿠오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