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남유럽

리예카, 2012년 6월 25일

askalai 2013. 1. 13. 17:07

6월 25일. 여전히 날씨는 화창 또 화창


파쟈나에 있는 숙소에서 풀라 시내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가, 시외버스를 타고 리예카(Rijeka)로 갔다.

지도를 한 번 더 활용하자면 풀라에서 북동쪽, 버스로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수샤크', 이탈리아에서는 '피우메'라고 불렸다는 도시. 1920년부터 1924년까지 딱 4년동안 독립국가의 지위를 누렸던 도시...  리예카 역시 항구도시지만, 만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만큼 바다를 향해 트여 있는 풀라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산과 바다가 맞닿은 위치이기도 하고, 조금 더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이탈리아의 영향력과 합스부르크 왕가(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력이 정면 충돌한 지점이기도 하다. 덕분에 여기도 역사가 참 복잡해서 아주 최근까지도 분쟁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보이는 성 비투스 교회. 겉모양을 보면 동방정교회일 것 같지만, 크로아티아까지는 아직 카톨릭 영향권이다.


리예카의 버스정류장은 제대로 된 건물을 갖추고 있지 않아 길 한복판에 내려주는 바람에 당황스러웠고, 분명히 가까운 관광중심가에 있다고 해서 예약한 호스텔(Lounge Hostel Carnvale)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물어보고 지도를 다시 확인하면서 리예카 중심가인 코르조 광장을 네 번은 돌았나보다. 알고보니 장소는 정말로 찾기 쉬운 곳이었지만, 여행자숙소는 4층에 있었고 간판이 없다시피 했다. 밤에 다른 여행자들과 잠시 어울렸을 때 들으니 나만 그렇게 해맨 게 아니더라; 그 점만 빼면 추천할 만큼 좋은 숙소였다. 나는 그냥 도미토리 침대에서 묵었지만 2인실도 따로 있었고, 무엇보다 공공 화장실/욕실이 여러 개에 굉장히 깔끔했다. 아침으로는 간단한 과일과 빵과 커피를 준다.

어쨌든 더운 날씨에 가방을 끌고 길거리를 뱅뱅 돌았더니 겨우 찾아 올라갔을 때는 완전히 지친 상태라, 샤워를 하고 잠시 누웠다가 저녁 때가 다 되어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분쟁의 그림자를 느낄 수 없는 활기찬 무역항이지만, 도시 건축에서는 합스부르크 가의 영향력이 강하게 보이고, 교회는 카톨릭인데도 동방정교의 흔적이 보이며, 음식에서는 이탈리아와 발칸 남부의 영향이 같이 보여서 복잡한 역사가 느껴진다. (상대적으로 풀라는 로마-베네치아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중요 지형지물, 도시의 상징 시계탑. 이 근처에 맥도날드도 있다 :)


이게 박물관이었던가 극장이었던가 가물가물한데... 근처에 큰 시장이 있다. 내가 갔을 때는 문을 닫은 시간이었지만.



언덕 위까지 다 리예카다. 중세부터 있던 도시답게 꼭대기에는 성이 하나 있음.


론리 플래닛에서 추천하는 음식점을 찾아서 꽤 으슥한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휴일이었던가보다. 걸음을 돌려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낮에는 제법 덥더니만 저녁을 먹으려니 바람이 심해서 좀 추웠다;

저녁으로 먹은 미트볼. Cevapi라는 이름인 듯 한데, 이건 사실 케밥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기도.


확실히 풀라와는 다른 느낌의 바닷가


해가 지고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고 일을 좀 했는데, 바로 옆방에 묵던 애들 중 하나가 잠시 이메일만 보낼 수 없겠냐고 말을 걸어온 덕분에 그 일행 셋과 어울리게 됐다. 당시 페이스북에 썼던 짜투리 여행기를 가져오자면...

"어제 시내 잠시 돌아보고 느긋하게 일이나 하려고 하다가 같은 숙소에 묵는 살짝 미친 덤앤더머 같은 호주애들이 벌인 파티에 끌려들어가서 술 먹었다... 헝가리애 영국애 미국애 우르우르 모이는데 나이가 많아봐야 스물 넷이네... 헐. 물론 동양인은 나 하나 뿐. 더머 쪽이 호빗같이 생겨서 귀엽다고 생각했더니 이것이 나름 작업을 걸더라... 별로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게 딱 거기까지. 고맙다 아가야;; 내 나이는 끝까지 말하지 않으마."

맥주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헝가리애가 가져온 집에서 담근 술까지 마셔봤다. 취하진 않았다. 아마 걔들보다는 내 주량이 세지 않을까 (알콜한국 이예~ -_-)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별로 기억이 나질 않네. 영국 여자애 둘이 2인실에 묵는다는 말을 듣더니 호텔을 잡지 그럴 거면 뭐하러 호스텔 묵냐고 쏘아붙이는 걸 보고 아 애는 애구나 했던 거랑(몇 달러 차이 안남...)... 런던에서 온 애가 있길래 다들 런던에 몰려가는데 거꾸로 나왔냐고 했더니 날씨가 끔찍하다며 그래도 올림픽 시작할 때 돌아간다고 했던 거 정도. 아, 물론 이 둘이 여행하다가 시골유지 아들인 헝가리 애를 만나서 미친 짓에 끌어들인 이야기는 좀 재미있었음... 어쨌든 별로 붙임성 없는 성격이다보니 친절하게 먼저 놀자고 해준 건 정말 고맙다 ^^;


아참. 리예카 시내를 걷다보면 서점이 블록마다 나왔다. 어쩐지 부럽고도 씁쓸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