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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박물관섬, 2012년 6월 20일

askalai 2012. 11. 21. 19:05
2012년 6월 20일, 비, 비, 비...

인생은 대개 취사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베를린에 길게 있었다면 사흘권이라도 사서 샅샅이 봤겠지만 내가 베를린에 배정한 시간은 단 이틀 뿐. 박물관섬의 다섯 개 박물관 중에 어디를 가느냐도 문제였지만, 어디부터 보느냐도 문제였다. 개관 직후인 9시-9시 반에 들어가면 어떤 박물관이라도 여유있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명한 박물관에는 관람객과 관광객이 몰려들고, 그만큼 돌아보기는 힘들어진다. 물론 내 체력도 저하된다. 사람이 많으면 세상 최고의 유물이라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사람이 지나치게 많고 그래서 피곤해지면, 세상 최고의 박물관이라도 짜증을 부를 수 있다.

어느 쪽이 먼저냐. 신박물관이냐, 페르가몬이냐. 이집트냐,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냐였다. 그냥 동전 던지듯이 정했다. 신박물관으로.

아직 한가로운 이집트관


아직 한가로운 이집트관. 아직 여유있는 체력. 들어가자마자 하악하악 모드로 돌변한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집트 석관! 수호석상! 미라 덮개! 카노푸스 단지! 독일에 간 지 보름이 되도록 하루에 몇십장까지도 찍은 날이 없었는데 이날 하루 이집트관에서만 백장을 가뿐히 넘겼다 ㅠㅠ

물론 이렇게 뛰어난 유물들이 다 어떻게 베를린에 와 있게 되었는가, 남의 나라 유물로 이렇게 생색을 낸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건가를 떠올리면 생각이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일단 즐길 건 즐기고.

이런 게 취향입니다


이집트 외계인설을 뒷받침하는(...) 부조 일부


내가 찍은 가장 로맨틱한 사진인 듯... 어떻게 다 부서지고 맞잡은 손만 남았을까.


으앙 짱좋아 ㅠㅠ


비교적 최근으로 올라와서. 미라에 씌우던 마스크...


이집트의 화장술은 정말 현대스럽다. 미적인 기준도 현대스럽고. 덤으로 미라 뚜껑에 그려놓은 얼굴들 보면 현대 마네킹이 생각난다...

아무튼 신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네페르티티님!!!! 또 하악하악. 정말 현대적인 미인이시더라. 도대체 그게 얼마나 오래된 유물인데 아직까지 색깔도 생생하고 어유. 다만 너무 귀한 유물이라서 사진촬영은 불가했다.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박물관 내 대부분이 촬영 가능)

흥분해서 이집트관 보고 나니 급격히 체력 저하가 온다. 뮤지엄샵까지 돌아보고 페르가몬으로 이동하려고 나갔더니... 몇 시간 비가 오고 나면 개지 않을까 싶었던 날씨는 오히려 더 험악해졌고, 줄도 길어졌다. 혈당치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라 우산 받쳐들고 페르가몬 박물관 옆 카페에 들어가서 뭐 좀 먹고. (파스타 값이 8유로씩이나 했지만 일단 먹어야 뭘 더 보지...)

다시 힘내어 도전! 페르가몬!

페르가몬 박물관의 자랑은 헬레니즘 문화와 바빌론/메소포타미아 유물이다. 박물관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그만큼 거대한 전시물도 여럿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페르가몬에 있던 신전을 통으로 옮겨온 전시관. 그리고 바빌로니아에서 통으로 뜯어온 이슈타르의 문(...)

이렇게 큰 유물은 어차피 사진으로 옮겨봐야 규모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하고, 둘 다 참 대단하다 혀를 내두르기는 했어도 내 취향은 아니다. 오히려 원래 자리에서 쓰러져 가는 신전의 모습이라면 감동했을 지 몰라도, 남의 나라에서 신전을 하나 들어내어 옮겨온 그 욕심에는 글쎄... 열심히 돌아보기는 했어도, 좋아할 수가 없더라.

그리스-헬레니즘 문화가 별로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도 이런 귀여운 조각에는 또 하악하악



이런 식이다. 시장의 문을 하나 통으로 가져다둔다거나.


헬레니즘과 바빌로니아 유물이 대표적이라지만, 2층에서 하고 있었던 이슬람 문명전도 흥미롭고 좋았다. 이때는 한달 뒤에 직접 터키에 가게 될 줄 모르기도 해서 그 아름다움에 더 감동했던 듯... 터키 돌아본 다음에 봤다면 그렇게 감탄하지 못했겠지 ^^;
 

다시 내려와서 메소포타미아 쪽


물론 유물사진은 넘쳐나지만; 지금도 사진을 너무 많이 올렸다 싶어서 이 정도로 생략...

박물관을 두 시간 정도 보고 나면 체력이 떨어진다. 시내를 걸어다니는 것보다 훨씬 피곤한 건 물론이고. 이제 비도 그친 듯 하여, 다시 나와서 계단참에서 좀 쉬었다.

페르가몬 박물관 전경. 개천같은 작은 강을 끼고 있다.


그래도 좀 쉬고 나니 하나 더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박물관 섬 끄트머리에 있는 보데박물관에 가볍게 들렀다. 여기에는 중세 조각품, 이탈리아 고딕 예술, 초기 르네상스, 그리고 비잔틴 예술품이 있다.

피곤하기도 하고 이탈리아-르네상스기 유물에는 큰 관심이 없으므로 비잔틴관과 화폐 전시만 보는 데 약 한 시간. 그나저나 신박물관이나 페르가몬에 비해 보데박물관은 참 한가롭더라.

비잔틴 유물도 재미있는 게 많다.


그래서 무려 박물관 세 곳을 보고 하루 일정을 끝냈는가 하면... 결국 또 좀 쉬고 나서 심심해져서 베를린 장벽까지 강행. 다음 포스팅으로 넘기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