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유럽
밧조덴, 2012년 6월 11일-6월 14일
askalai
2012. 9. 29. 23:05
6월 11일, 뮌헨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뉘른베르크에 멈춰서 생강빵을 사들고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으로 돌아갔다.
6월 15일 마감인 일이 있었기에, 며칠 동안 나가지 않고 일을 했다.
이모가 4년째 살고 있는 집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S3을 타고 밧조덴Bad soden 역까지 20분, 다시 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려가야 하는 외곽에 있었다. 버스가 달리는 길 중간에 양이 풀을 뜯는 목초지까지 있으니 시골 마을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엄연히 프랑크푸르트의 위성 도시이자 휴양 도시다. 프랑크푸르트는 중요한 도시지만, 시내는 작고 건물은 낮으며 녹음이 짙다. 65만명(!)으로 집계된 인구조차 모두 시내에 살지 않고 대부분 이런 위성 도시들에 흩어져 사는 모양이다.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큰 길을 따라가면 초승달 모양으로 걸어야 했지만, 사촌동생이 가르쳐준 지름길은 교회 묘지를 통과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닫은 후에 묘지를 통과한다. 대개 한국 사람들의 눈에는 이렇게 마을 한가운데에, 사람 사는 집 바로 옆에 묘지가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인다지만... 무덤 산책을 즐기는 나에게는 참 보기 좋았다. 죽음이 삶과 평온하게 공존하는 모습.
일을 하다가 문득 내켜서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산책을 했다. 동네에 있는 모든 주택이 제각각으로 설계가 다른데, 지붕만은 색과 모양이 통일되어 있어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유독 아름다웠다. 법으로 그리 한단다. 지붕에 통일성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다보기 좋은 모양이어야 건축 허가를 내준단다. 자기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긴 시간을 두고 보아야 가능한 사고 방식이다. 오래된 건물을 쉽게 허물지 않는 것도, 시간을 오래 두는 건축 방식도 그렇다. 지금 한국이 가질 수 없는 사고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이유는 있다. 조금의 불편도 감수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득이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믿을 수 없기 때문, 불안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획기적인 해결책이나 철인이 나와서 여유와 미래를 안겨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조금 불편에 익숙해져서 생기는 여유, 눈앞의 이득에 급급하지 않아서 얻을 수 있는 안정감도 있지 않을까... 모두는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독일은 석달 여행한 나라 중에서 제일 아름답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나라였다. 평온했다. 하지만 아마 그래서 더, 살기에는 제일 좋은 나라이거니 싶다.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지는 않다. 여기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추석 맞이, 보름달에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