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2] 뵤도인 - 철학의 길
2월 11일.
날씨는 교토에 간 지 나흘만에 처음으로 화창했다. 햇빛 비치는 교토 시내는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여름에 갔을 때야 많이 봤지만)
전날 밤에 사둔 버스 카드를 써서 교토역까지 간 다음, JR 나라선을 타고 우지역으로 향했다. 사실 이날은 일본의 국경일이었다. 그래서 혹시 관공서(?)나 박물관이나 아무튼 가야 할 곳이 쉬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었지만 그건 아니고, 그 대신 교토에 놀러온 사람이 많았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니 합쳐서 2박 3일의 휴일... 오사카는 물론이고 도쿄에서도 짧게들 놀러온 모양이었다. 역에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잠시 패닉(...)이었지만 역시 우지에 가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한시름 놓았다.
우지까지는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시외라선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시내라도 아라시야마 같은 곳은 교토 사람들만 주로 찾는 듯 했지만.
우지엔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유명한 우지차, 또 하나는 우리가 목표로 한 뵤도인(평등원), 그리고 겐지 모노가따리. 원래 헤이안 시대에 귀족들의 별장지였다는데 그래서일까. 역에 내려서 고개를 들면 바로 신호등 위에 "겐지 모노가따리의 고장"이라는 설명이 붙은 겐지와 왠 여자 현판(?)이 붙어있다. 아래 사진은 뵤도인 다 돌아보고 역으로 돌아갈 때 강변에서 본 조각상.
뵤도인은 정말, 정말, 정말 좋았다. 이거야말로 사진이 커야 멋있는데!!
아무튼 위 사진들은 모두 다른 각도에서 찍은 봉황당이다. 10엔짜리 동전 뒷면의 모델로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일본의 다른 곳에서 본 건축물들보다 친근한 느낌이기도 하다. 원래는 이 봉황당 중앙에 국보인 아미타불이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땐 수리중이었다. 원래는 11세기 어느 권세가의 산장이었다가 절로 바뀌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지붕 양쪽에 올라간 봉황이 유명한데, 지금 건물 위에 있는 놈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보물관에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문제의 보물관에 들어가보면, 여기도 정말 정말 정말 좋다! 특히 각기 다른 얼굴에 다른 포즈로 다른 악기를 들고 있는 목조 비천상들은 감동이었다. 전시 자체도 무척 잘 해놨고.
감동해서 뵤도인 안을 뱅글뱅글 돌다가 겨우 나가서 우지천을 건넜다. 섬 같은 길쭉한 땅을 가운데 두고 다리를 두 번 건너는데, 한쪽은 물살이 조용하고 한쪽은 무서울 정도로 급했다.
다리를 건너면 우지신사가 있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우지가모 신사가 있다. 위 사진이다. 이 신사도 역시 세계문화유산이다... 솔직히 어떤 부분이 그렇게 의미가 있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혹은 신도 관련 건축)으로 여겨지며 건축 양식이 독특하다 한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금은 을씨년스러웠다.
신사까지 돌아보고 나니 특별히 지도상에 더 가보고 싶은 곳도 없고 해서 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려가다가 다리 위에서 봉황당을 한 번 더 훔쳐보고, 역까지 이어진 길에 쭉 늘어선 우지차 판매점들을 기웃거렸다. 하나같이 차 전문이라 그런지 들여다보는 사람마다 무료로 차를 대접한다. 근데 대개 말차라서 쓰다 -_-;;
전부터 노리고 있었던 겐마이차(현미차)를 사고, 역 근처 슈퍼에 들러서 더 싸고 막 먹을 수 있는 겐마이차를 한 봉지 더 샀다. 그리고 교토역으로 돌아가서 9층 안내소에서 이것저것 또 물어보고, 교토역 지하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실은 안내소에서 괜찮은 유바집을 물어봤는데 "쿄 요리가 아니고요?"라고 되묻질 않나, 대개 유바는 두부집에서 곁다리로 판다지 않나, 겨우 가르쳐준 곳도 찾기 힘들어 보여서 집어치우기로 했다. 그래서 내려갔다가 돈까스와 도시락을 같이 파는 집이 있길래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
내가 먹은 건 오반자이벤또. 친구는 돈까스. 위 사진이 문제의 도시락인데, 고등어조림과 고로케 등 여러 가지 반찬이 나오지만 특히 이 집의 자랑이라는 각종 뿌리조림(...)들이 맛있었다. 한식집에서 제일 좋은 게 각종 나물무침이라면 일식은 조림을 잘 하는 듯도...
자, 남은 반나절 일정은 은각사와 그 밑에 있는 '철학의 길'이다. 교토역 앞에서 100번을 타고 은각사 앞에서 내리니 4시. 4시 반이면 입장 마감, 50분이면 퇴장이니 아슬아슬했다. 덕분에 사람이 많은 것은 피할 수 없었다. E양이나 나나 지난번에 갔을 땐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밀려다니면서 안을 보려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은각사. 가레산스이 정원과 함께.
이미 말했듯이 이날 교토에 놀러간 사람이 많기도 했고, 몇년 사이에 중국인 관광객이 늘기도 했고, 은각사 자체의 지명도도 높아진 것 같았다. 은각사 올라가는 길에 기념품 가게가 많아진 것을 보아도 그랬다. 여러모로 기쁘지는 않은 일이었다 ^^;
하지만! 철학의 길은 은각사에서의 실망을 모조리 만회해주고도 남았다. 여름에 갔을 땐 너무 지치고 힘든 데다 더워서 앞부분만 좀 보고 말았는데, 이날 걸어보니 어찌나 좋은지... ㅠ_ㅠ
길 양쪽으로 집도 나무도 운치가 있고
이런 예쁜 까페들에
이런 멋진 공방들도 있다. 그나마 까페나 공방은 괜찮지만 길 자체가 얼마나 좋았는지는 사진으로 제대로 표현이 안되니 안타까울 뿐이다. 내려가다가 해지는 교토도 봤는데 황혼을 배경으로 보이는 절이며 탑 그림자 또한 절경이었다. 교토에 길게 묵는다면 철학의 길만 여러 번 찾을 것 같다. 저 위에 보이는 까페들도 한번씩 가보고 말이다. 아,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 혹은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재미있었다. 어쨌든 단체관광객은 절대 가지 않는 코스라서 :)
이 길 사이사이에 절도 몇 군데 있는데 해질녁이라 다 입장시간이 지났고, 끄트머리쯤에 대풍신사가 있었다.
쥐 신상이 유명하단다 :)
이 길을 따라 걸은 게 한시간 남짓... 아니, 한시간 넘게 산책을 했나보다.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대풍신사에 들를 때쯤엔 꽤 몸이 차가웠다. 날도 다 어두워졌고.
큰길까지 내려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서 지난번에 갔던 데 말고 다른 북오프에 들렀다가, 시조가와라마치로 가서 갑빠스시에 다시 갔다. 지난번에 갔을 땐 애매한 시간이라 그나마 한가했던 건지, 8시가 넘었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그냥 새우나 튀김류를 먹었어야 했는데 괜히 성게알을 시도해서 피봤다 OTL
아무튼 밥을 먹고 좀 회복이 되어 강변을 걸어서 며칠 전에 가봤던 대형 북오프로. 지난번에는 이렇게 가까운 줄 모르고 버스를 탔었지만, 시조가와라마치에서 강만 건너면 금방이다. 아참, 이 강가에 스타벅스가 하나 있는데 건물이 특이하고 예쁘다... 스노우캣에 사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북오프에서 지난번에 못산 CD부터 다른 만화책을 이것저것 사고 버스를 타려고 했더니, 차가 끊겼다! 구궁... 안그래도 막판에 북오프 두 군데를 다 간 게 무리였는지 녹초가 되었건만. 할 수 없이 다시 걸어서 가와라마치로 돌아가서 아직 안끊긴 버스를 타고 숙소로 백. 그래도 이번엔 몰츠를 파는 가게를 발견해서 하나 사들고 돌아가서 마시고 잤다. 총평하자면,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
다음날은 오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