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kalai 2009. 12. 22. 12:33

10일은 뒹굴거리다가 알바비 받은 SW양이 사는 차를 얻어먹고 시내를 잠시 누볐을 뿐이므로 통과. 12월 11일.


원래 이번에 오사카에 가기로 결정한 계기가 문득 떠오른 '아. 고야산 가보고 싶다'였다. 일본 진언밀교의 본산, 세계문화유산이며 수많은 요괴물에 나오는 바로 그곳이다. (여담이지만 ㅊ님은 "그 왜, X에도 나오잖아요?"하자 "어머나 그게 지어낸 게 아니라 진짜 있는 곳이에요?"라고 반응하시기도 했다...) 마침 SW도 안가본 곳이라니 더 잘됐다 싶어서 돌아오기 전날로 정해두었는데, 역시나 비를 몰고 다니는 이몸. 아침부터 주륵주륵 비가...

아침 일찍 나서서 난바역으로 가서 고야산행 차를 타고 약 2시간. 8량짜리였는데 뒤 4량은 하시모토에서 분리되고 4량만 덜컹거리며 산속을 구불구불 올라간다. 처음에 생각을 잘못해서 뒤쪽에 탔다가 황급히 앞쪽으로 이동하는 해프닝 연출; 졸다 깨다 비오는 바깥을 내다보다가 종착인 고쿠라바시역 도착. 역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바로 연결되는 등산철도(또는 케이블카)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목적하는 절/묘지로 가야 한다. 모든 구간 쓰루토 패스 적용...

경사가 가파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일단 10분쯤 가서 내리고 나면 절들이 올망졸망 모여있어서 걸어다니기 어려움은 없다. 비만 안온다면. 비만 많이 안온다면 말이다 -_-

비가 많이 내리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 무조건 일단 내가 보고 싶었던 절(金剛峯寺)로 이동.

空海(구카이)가 816년 당나라에서 귀국해서 세운 진언종의 본산이란다. 물론 지금의 절 건물이 그 때 그 건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백년은 족히 된 목조건물의 자태.

빗줄기까지 찍히는 날씨-_-

무척 좋아하는 枯山水 정원. 이번에는 료안지에 들르지 못했다 싶더니 여기에도 있었다.

여기가 일본에서 제일 큰 枯山水 정원이라고...?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방마다 맹장지에 그려진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냥 금칠을 한 경우도 있고, 동물이나 꽃, 당나라 풍경, 역사적인 장면을 그려넣기도 했다. 
어딘가 책에서나 보던 풍의 그림들. 즐겁게 봤다. 사진은 금지.

중간에 차마시는 곳이 있다. 넓은 방이지만 날이 스산하다보니 다들 난로 곁으로...


그나저나 고야산에 가면 두부도 있고 술 만쥬도 있을 테니 그걸 먹자! 라며 평소와 달리 비상식량도 빠뜨리고 간 우리. 초반에 비는 많이 오는데 그런 거 하나도 안보여... ㅠ_ㅠ 
일단 절에 들어가서 차와 과자로 잠시 속을 달래긴 했지만 대략 난감. 아. 끌려온 SW에게 죄스럽도다 -_)

여기도 나무가 참 좋다.


추위에 떨며 곤고부지를 나서서 우선 편의점 대피. 따뜻한 음료에 호빵 하나씩 먹고 걸어서 壇上伽藍로. 걷는 길도 좋았고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거대한 금당과 탑(끄악 저 주황색은 무슨 악취미야!), 소소한 애염명왕당 등을 돌아보니 이제 뭘 하나 싶어진다 -_)

다행히 이제쯤 빗발은 약해졌다. 여기쯤 와서야 가게들이 좀 보인다. 술 만쥬를 사서 먹으며 느긋하게 걸어서 大門으로 이동.

뒤에 보이는 게 대문...


술 만쥬는 너무 달았다...

밥을 먹고 싶었지만 괜찮아보이는 집이 하나도 없어서 눈물이 ㅠ_ㅠ

나중에 버스타고 돌아가면서 보니, 우리가 코스를 잘못 잡았더라. 생각대로 '일단 내려서 뭔가 먹고 한 바퀴 돌아본다'로 가려면 방향을 달리 했어야 했다. 
그치만 뭐 어쩌겠어. 뒷문으로 들어가서 앞문으로 나온 일이 한 두번도 아니고 -_-

그 대신 이런 풍경을 봤으니 됐다.

좁은 창문으로 내려다보듯이...


그 순간 '아아. 영기가 있긴 있구나' 싶었다. 사진으로 표현이 안된다.


배고픔과 비라는 이중고 때문에 이쪽만 보고 말았지만, 고야산 반대쪽에는 거대한 묘지가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일본 제일이라는 말이 있어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모두 이 산에 묘를 썼다고 한다. 그밖에 산을 타고 도는 산책로(혹은 등산로)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런 건 다음 기회에...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다이몬 앞에서는 무당인지 불자인지 모를 아저씨가 인왕상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소리내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제물의 면면이 이채로와서 찰칵...


그치나 싶던 비는 다시 거세지고, 똑같은 길을 되짚어서 하산. 과자 하나 먹고 내내 굶주렸던 우리는 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달려가서 오므라이스를 '후룩후룩 마셨다'. 내 생전 그렇게 빠른 속도로 밥먹어보긴 처음이다... 고야산에 가실 분은 꼭 비상식을 지참하시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