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중앙/티벳

티베트] 포탈라 궁 예매, 세라 사원

askalai 2007. 7. 28. 15:48
7월 9일. 볼까말까 하던 포탈라궁이지만 CH님과 창원 커플과 의기투합. 예약을 하러 가기로 했다.

왜 예약인고 하니, 포탈라궁은 하루 10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해놓고 그 전날 오전에 예약을 받는다. 돈을 내는 것은 아니고 다음날 몇 시에 갈지 시간만 받는 거다. 정작 예약을 받는 건 12시지만 보통 10시쯤부터 줄을 서야 한다고 한다. 최고 성수기 때는 10시에 가도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러나 여행사에 맡기면 원래 입장료(100위안)의 두 배 이상을 줘야 하니...

포탈라궁을 빙 두른 코라


예약매표소는 포탈라궁을 마주보고 왼쪽으로 올라가다가 있다. 네 명이니 택시를 타고 도착한 우리. 그런데 CH님이 늦을까 싶어 마니차 옆으로 서둘러 막 걸어가신다. 이제 적응 다 하셨나보다. 그렇게 빠른 걸음이라니. 뒤처진 세 사람은 이상하다, 여긴 관광객 같은 사람은 안보이고 전부 순례자들인데,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뒤쫓아갔다.

아니나다를까. 여긴 순례로(코라)였고 가야 할 곳은 한참 전에 지나친 거였다. 하하. 뭐, 덕분에 코라 구경 잘 했다. 그러나 거의 같은 방향(시계방향)으로 걷고 있는 순례자들 사이를 역방향으로 질주하려니 뭔가 뜨끔뜨끔하더라는. 역방향으로 돌면 뵌교신자 아닌가?(...)

아무튼 10시 20분쯤 도착하니 이미 줄이 꽤 있다.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지붕에 의자까지 갖춰두어, 쪼르르 앉아서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멍하니 기다렸다. 사이사이 미리 부탁해뒀다가 끼어드는 사람은 있지만, 우리 뒤에 온 사람 수에 비하면 앞이 그래도 적다. 사실 여권만 가지고 있으면 한 사람이 네 명분을 예약할 수 있고, 또 창원 아저씨가 자청해서 그리 하겠노라 하셨으나 셋이 어디 돌아다니기도 귀찮아져서 그냥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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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를 보았다. 뽀송뽀송하니 깨끗하고 건강해 보이더라. 오물오물 잎을 먹다가 사람들을 흘끔 보고 차 밑으로 이동해서 쉬고, 다시 오물오물 먹다가 차 밑에 들어가서 자고, 아이들이 꺄- 하면서 다가가자 거만하게 대응해주시고. 팔자 참 좋아보이더라. 하긴 안그래도 야크와 양 말고는 거의 먹지 않는 티베트 사람들인 데다가 포탈라 궁 밑에서 누가 감히 살생을 하랴. 한국 사람이라면...(이하 생략)

12시가 되어 드디어 예약 개시! 주는대로 받은 시간은 다음날 11시 20분이다. 이걸로 포탈라궁에 이틀 오전을 쓴 셈이다. 시간이 한 시가 다 되어가니 점심을 먹으러 다시 택시를 타고 바코르로 향했다.

어느 기념품가게 앞에서. 야크머리뼈...

이틀 연속 스노우랜드 레스토랑에서 야크 스테이크(쿨럭)

전날은 오전 내내 걸어서 그렇게 피곤했던 걸까. 오전 내내 앉아서 기다리기만 했더니 별로 피곤하지 않아, 점심 먹고 레스토랑 앞 노점에서 수박 한쪽씩 사먹고는 바로 세라 사원에 가기로 했다.

세라 사원: 쫑까파에서 설립.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이며 라싸 근교 3대 사원 중 하나. 본래는 티베트 최고의 권위를 가진 불교 대학. (현재 그 권위는 인도 다람살라에 새로 선 세라 사원에게 있다고 함). 관광객들에게는 오후 3시의 문답토론시간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달라이 라마가 속한 종파는 개혁종단 겔룩파(황모파)이며, 겔룩파가 개혁해나온 종파가 쫑까파다.


세라 사원은 넓고 깨끗하고... 어딘가 갓 파낸 유적지 같은 느낌을 풍겼다. 파손된 건물도 많고, 규모에 비해 남아있는 스님도 얼마 없어서일까. 아래 사진들이 딱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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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큰 건물(추정:세라메 다짱)에 들어가볼까 하고 있는데 징소리가 울리더니 빨간 가사를 두른 스님들이 바삐 모여들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옆에 있는 정원이다. 교리문답 시간이 온 것이다.

두 시간은 족히 움직이고 땀을 내야 하니 그런가, 정원은 그늘이 많아 서늘했다. 젊은 스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준비태세를 갖춘다. 그렇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다. 보다시피 정원 벽을 따라 쭉 늘어선 게 다 관광객이다. 무심한 척 하지만 스님들도 신경이 쓰이는 눈치. 보고 있으려니 내 마음도 무거워진다. 이건 이미 실체를 잃은 관광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심지어 문답 중인 스님 팔을 잡고 같이 사진찍자는 만행을 저지른 작자도 있었다. 다른 관광객들의 비난이 쏟아져서 물러나오긴 했지만-_- 못본 척 하면서도 스님이 확 짜증이 난 것 같더라. 이것도 나름 수행이라면 수행이려나. 그렇게 생각해봐도 나 역시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정작 문답이 시작되자 스님들도 조금씩 집중력이 올라가는 것 같다. 이 문답시간이 유명한 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큰 동작으로 손뼉을 치고 한 바퀴 도는 등의 의례행위를 하는 데다가 열기가 올라가면 거의 싸우는 것처럼 동작과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과장된 쇼맨십을 보여주고 누군가는 신경이 쓰이는 듯 소심한 모습을 보이고 누군가는 일부러 코믹한 연출을 보여준다. 역시 여기도 참 가지각색이다. 운이 좋았는지 우리가 쪼그리고 앉은 앞쪽에 자리잡은 스님들은 무척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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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라싸에 가실 분이 있으면, 3시에 징이 울렸을 때 정원으로 가지 말고 일단 건물들 안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차피 문답은 다섯 시가 넘도록 이어진다. 그리고 4시쯤이면 단체 관광객은 다 빠지고, 스님들은 문답에 열중해서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게다가 4시면 어지간한 건물은 문을 닫기 시작한다.

우리도 4시쯤 빠져서 아까 못본 건물을 보러 갔지만, 건물 안은 아직 개방되어 있어도 옥상은 문 닫기 직전이었다. 문앞에서 오체투지하던 이들도 자리를 뜨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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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에 있다는 참배로는 돌아볼 생각도 못하고 하산. 올라갈 때와 다른 길로 내려가려니 버려진 건물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는 홀로 참배를 하고 있었다.

다시 바코르로 돌아가서 한 바퀴 돌면서 숙소를 살폈다. TGH가 교통이 안좋은 것 하나가 단점이라... 창원 아저씨는 조캉사원이 내려다보이는 만달라호텔을 염두에 두신 것 같았는데, TGH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마나님의 반대에 부딪쳐 가격과 방 상황만 알아보고 후퇴. 나중에 보니 마지막 날은 그쪽에서 묵으신 것 같더라. 나도 바깥에 있는 도미토리를 알아보았지만 돌아보다보니 마땅치가 않았다.

거듭 느꼈지만 희한하게 혼자 온 여행자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좋은 분들이어선지 하루 이틀 같이 다녔을 뿐인데도 CH님이나 다른 분들과 헤어지기가 싫었다. 이제까지 여행 다니면서 그래본 적이 없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