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본섬 서쪽-긴키, 주고쿠
[일본여행] 열째날, 나라 - 그리고 교토의 야경
askalai
2002. 12. 3. 14:42
7월 21일.
오사카를 포기하고 교토로 돌아가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미 전날 말한대로 고베의 야경을 아쉽게 뒤로 해야 했던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호류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호류지 하면 나라에 있는 걸로 여기기 쉽지만, 호류지와 나라의 거리는 만만치 않게 멀다. 오사카에서 출발한다면 호류지로 곧장 가는 차가 있으니 그쪽에 들러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나라로 갈 수 있겠건만, 교토에서 호류지로 곧장 가자면 동선이 좀 난감해지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게다가 하도 열심히 돌아다녀서 이쯤 해서는 조금 움직임을 늦춰야 할 필요도 있었고...
그래서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호류지는 포기. 나라 시내만 보기로 마음을 접었다.
우리도 아쉬웠고, 돌아와서 '호류지를 안가다니이이이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뭐어. 원래 어디든 가서는 '안왔으면 후회했겠다'고 말해도 정작 안간 곳을 후회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물론 다음번에 기회를 잡으면 호류지와 뵤도인을 보리라고 다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날도 변함없이 숙소를 나선 시각은 7시 반. 그러나 교토역에 내려야 할 것을 가와라마찌 역에 내리는 바람에 조금 늦어져서, 9시 차를 타고 나라로 향했다. 여기서 또 한 번 실수. 아침식사를 제대로 못해서(이것도 다 전날에 워낙 늦게 도착한 탓이지만 ^^;;) 급하게 빵을 사들고 차에 올랐더니만 특급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차가 좋더라 --;; 그래서 간사이 패스를 마지막으로 쓰고 있던 나도 추가요금을 물어야 했고, J양은...이쯤해서 J양은 간사이 패스를 사지 않아서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따위에는 신경을 끄기로 한 참이었다. 흠흠.
아무튼 그 덕분에 30분만에 나라에 도착하기는 했다.
주요 볼거리를 다 걸어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도시인 나라(奈良)는 서기 710년부터 784년까지 헤이죠쿄(平城京)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수도였던 고도. 백제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토로 천도한 이후로는 절과 신사를 중심으로 문화를 꽃피웠으며, 지금은 사실 다른 문화유산보다도 사슴 공원으로 더 유명하다. 왕가 직속이라 사냥은커녕 절대 해치지도 못하는 사슴들이 다글다글. 사실 이곳도 이틀 여정을 잡아서 서쪽과 동쪽을 다 보면 좋겠지만, 시간상 관광객이 많이 움직이는 도다이지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주섬주섬 도시락거리를 사들고 고후쿠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후쿠지(興複寺)는 원래 아스카에 있던 절을 헤이안 천도 당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절로, 여러 차례 불에 타고 해서 지금은 삼중탑, 오중탑, 국보관을 포함한 12채 건물 정도만 남아 있다. 공원 진입로에 자리잡고 있어서 특히 오중탑이 굉장히 눈에 띈다.
고후쿠지의 5중탑은 정말 낡고 고색창연한 데다가, 이제까지 일본에서 본 탑들에 비해 친숙한 느낌이 더 강하다. 지붕도 거의 기와지붕이고...얼마 안되는 건물을 슥 둘러보고, J양은 생각이 없다 해서 나만 입장료 내고 국보관에 들어갔다. 여기엔 저 유명한 목조 아수라상이 있단 말이다 *.* 으흐흐. 아수라상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수라상 머리 부분. 8세기 가마쿠라 시대의 목조 조각으로, 팔부중 조각 세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하다. 투박해 보이면서도 힘이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드는 조각품
수업 때 슬라이드가 뜨자마자 "야 저거 싸이 닮지 않았냐"는 소란을 일으켰던 불두 ^^;; 8세기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하게 세공한 등롱, 위의 아수라상을 포함하여 8세기 가마쿠라 시대 목조로 유명한 팔부중상 등이 정말 볼만했다. 교토 국립박물관보다 훨씬 만족스러웠을 정도니까 뭐어.
아무튼 혼자 그렇게 돌아보고 다시 J양과 합류. 도다이지를 찾다가 문득 뭔가 빠뜨린 게 있음을 깨닫고 되돌아가서 고후쿠지 근처에 있는 사루사와 노이께 연못으로 향했다. 그렇게 탁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맑은 것도 아닌 녹색 연못은 바람없는 날이면 고후쿠지의 오중탑 꼭대기가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에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게 나라 8경의 하나라던가. 오후에 도다이지에서 돌아오다가 다시 들렀을 때 끝내 그 모습을 보기는 봤지만 대체 왜 8경에 꼽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아무튼 어슬렁어슬렁 한가로이 사슴들이 거니는 잔디밭을 지나, 나라 국립 박물관 옆을 지나쳐서 도다이지로.
도다이지에 대한 감상: 크다!
정말 크다. 히가시 혼간지 본당이 목조건물로 최대라지만 그건 길이 얘기고, 높이를 생각하면 이쪽이 더 크다.
도다이지(東大寺)는 756년 쇼무 천황이 처음 세운 후 1180년, 1567년 두 번의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1692년에 재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라는 대웅전과 세계 최대 청동불상이라는 대불, 두 가지로 유명한데, 그나마 이 대웅전도 재건하면서 원래 크기의 3분의 2로 줄어들었다니 원래는 대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거짓말인 듯 싶다. (혹은 과거에는 큰 걸 좋아했고 지금은 작은 걸 좋아한다거나? 하긴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서로 바뀐 걸지도;;) 아무튼 재건 과정에서 양식이 이리저리 섞여서 좀 혼란스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웅전 지붕 끄트머리가 살짝 들어올려진 모양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고색창연하고 한눈에 봐도 오래된 나무 기둥들도 마음에 들고.
내부는 별로 볼 게 없었다. 세계 최대의 청동불상이라는 대불은 그저 크기만 할 뿐이다. 멋이 없다고나 할까. 그보다는 주위 사면을 차지하고 있는 사천왕상 쪽이 조각으로서는 더 멋이 있다. 아무튼 뭐어, 높이 49미터에 폭이 5미터, 무게가 452톤...손바닥에만 사람이 16명이나 올라갈 수 있는 불상이라고 하니.
이 안에는 또 한가지 유명한 게 있다. 대불 오른편 뒤쪽에 있는 커다란 기둥에 뚫린 작은 구멍.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나 겨우 통과할 법한 작은 구멍인데, 이 안을 통과하면 1년치 불운을 막을 수 있다나 뭐라나. 해보고픈 마음도 좀 있었지만 쭈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 --;; 뭐, 용감한 어느 아저씨가 성공한 걸로 봐서 가능하다는 건 알겠지만 말이다. 내 움직임이 얼마나 웃긴지(...) 잘 아는 나로서는 이런 순간에 소심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씀.
어쨌거나 도다이지를 빠져나와 도리이를 지나서 니가쯔도(二月堂), 산가쯔도(三月堂)으로. 산가쯔도는 도다이지 창건 이전에 세워진 절의 자취라는데 뭐, 자세한 것은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입장료 낼 필요가 없다는 안내책자의 말을 수긍하며 통과, 니가쯔도의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야아, 니가쯔도의 난간 위는 정말 전망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삐걱이는 나무층계 옆에는 뭐가 있나 했더니 차를 마실 수 있는 휴게실. 하지만 버려진 것처럼 썰렁하고 사람이 없다. 그래도 급수기와 녹차가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나서는 터덜터덜, 허탕의 연속.
쇼소인(정창원)을 겉만이라도 보려고 했더니 휴관일이질 않나(울타리가 하도 높아서 안이 들여다보이지도 않더군! 분개), 나라국립박물관은 공식휴관일도 아닌데 놀질 않나...날이 하도 더워서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배도 고프지 않았다. 허탈한 심정으로 맛차시럽을 부은 얼음가루를 사먹고 (나쁘진 않았지만 너무 달았다), 쉬엄쉬엄 다시 연못까지 내려가니 4시.
이번에는 날이 좋아져서 사루사와노이께 연못에 5중탑 꼭대기가 비쳤으나 흠흠, 나라 8경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는 나라역 근처에 있다는 헌책방을 찾아 어슬렁어슬렁. 가다가 색색깔의 과자가 신기한 데다가 교토에서도 보지 못한 물건이 많길래 어느 과자 가게에 들어갔는데, 맛차인지 과자인지 알 수 없는 물건에 호기심을 느껴 집어들었다가 가게 안의 아주머니들과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하하...과자냐고 물어봤다가 영어가 통하질 않아서 아주머니들 다섯 분이 다 모여서 영어, 일어,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 호뜨 워떠가 뭔지 못알아들어서 고생을 좀 했지만 아무튼 과자는 아니고, 부숴서 뜨거운 물을 부어 저어 먹는 차라는 것까지는 알았다. 친구들과 함께 먹을까 하고 사왔는데, 알고보니 맛차의 쓴맛이 아니라 끔찍하게 단 맛이 나는 놈이었다;;
아무튼 아주머니들이나 우리나 꽤 재미있는 일화였던 것 같다. E양이나 G양과 함께 있을 때는 일어가 되니까 이런 소동이 없었지 ^^;
그러고 나서 날이 너무 더워서 J양이 녹초가 된 덕분에 시내 쪽에서 헌책방 한군데만 둘러보고 모스버거로 들어갔다. 다리도 쉴 겸,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쐴 겸...이런 걸로 저녁을 때운다는 게 과히 달갑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고유 햄버거집인 모스 버거는 꽤 맛있다는 소문이라서. 모스 스파이시 치즈 버거를 먹어보았는데, 소스가 매콤하고 주문하고 나서 바로 만들어주는 것, 세트에 샐러드가 같이 나오는 것 등은 마음에 들었다.
헌책방을 하나 더 둘러보고 긴테츠 나라역으로 돌아가니 어느덧 7시. 8시가 조금 넘어서 교토 도착. 오는 길에 교토역 11층에서 야경을 공짜로 볼 수 있다던 팁이 떠올라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고 하니, 야경을 보며 맥주 한 캔 들이키면 딱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날 야경이 일본에서 본 네번째 야경이지만, 이 날이 단연 최고였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콘서트를 하고 있었던 데다가, 정말 과감한 건축기법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공간 낭비......건물 연결로, 혹은 건물 사이를 텅 비워서 10여층에 이르는 층계를 밖으로 내놓고, 건물 사이에 있는 연결 통로에는 불을 밝혀놓았다. 사람들은 이 바깥 층계에 앉아서 저 밑에서 하는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꼭대기에 있는 스카이 가든은 사방에 거울을 설치해 놓아, 맞은편에 있는 교토 타워가 사방에 있는 것처럼 비쳐보인다. 크~~ J양과 우리의 선택을 자축하기 위해 맥주집을 찾아 돌아다녀 보았으나 마땅한 집이 없어서 다시 1층까지 내려가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기린 맥주 두 캔에 조개살 말린 것으로 추정되는 안주 한 봉지.
짧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너무나 기억에 남는 술이었다.
오사카를 포기하고 교토로 돌아가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미 전날 말한대로 고베의 야경을 아쉽게 뒤로 해야 했던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호류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호류지 하면 나라에 있는 걸로 여기기 쉽지만, 호류지와 나라의 거리는 만만치 않게 멀다. 오사카에서 출발한다면 호류지로 곧장 가는 차가 있으니 그쪽에 들러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나라로 갈 수 있겠건만, 교토에서 호류지로 곧장 가자면 동선이 좀 난감해지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게다가 하도 열심히 돌아다녀서 이쯤 해서는 조금 움직임을 늦춰야 할 필요도 있었고...
그래서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호류지는 포기. 나라 시내만 보기로 마음을 접었다.
우리도 아쉬웠고, 돌아와서 '호류지를 안가다니이이이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뭐어. 원래 어디든 가서는 '안왔으면 후회했겠다'고 말해도 정작 안간 곳을 후회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물론 다음번에 기회를 잡으면 호류지와 뵤도인을 보리라고 다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날도 변함없이 숙소를 나선 시각은 7시 반. 그러나 교토역에 내려야 할 것을 가와라마찌 역에 내리는 바람에 조금 늦어져서, 9시 차를 타고 나라로 향했다. 여기서 또 한 번 실수. 아침식사를 제대로 못해서(이것도 다 전날에 워낙 늦게 도착한 탓이지만 ^^;;) 급하게 빵을 사들고 차에 올랐더니만 특급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차가 좋더라 --;; 그래서 간사이 패스를 마지막으로 쓰고 있던 나도 추가요금을 물어야 했고, J양은...이쯤해서 J양은 간사이 패스를 사지 않아서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따위에는 신경을 끄기로 한 참이었다. 흠흠.
아무튼 그 덕분에 30분만에 나라에 도착하기는 했다.
주요 볼거리를 다 걸어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도시인 나라(奈良)는 서기 710년부터 784년까지 헤이죠쿄(平城京)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수도였던 고도. 백제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토로 천도한 이후로는 절과 신사를 중심으로 문화를 꽃피웠으며, 지금은 사실 다른 문화유산보다도 사슴 공원으로 더 유명하다. 왕가 직속이라 사냥은커녕 절대 해치지도 못하는 사슴들이 다글다글. 사실 이곳도 이틀 여정을 잡아서 서쪽과 동쪽을 다 보면 좋겠지만, 시간상 관광객이 많이 움직이는 도다이지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주섬주섬 도시락거리를 사들고 고후쿠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후쿠지(興複寺)는 원래 아스카에 있던 절을 헤이안 천도 당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절로, 여러 차례 불에 타고 해서 지금은 삼중탑, 오중탑, 국보관을 포함한 12채 건물 정도만 남아 있다. 공원 진입로에 자리잡고 있어서 특히 오중탑이 굉장히 눈에 띈다.
고후쿠지의 5중탑은 정말 낡고 고색창연한 데다가, 이제까지 일본에서 본 탑들에 비해 친숙한 느낌이 더 강하다. 지붕도 거의 기와지붕이고...얼마 안되는 건물을 슥 둘러보고, J양은 생각이 없다 해서 나만 입장료 내고 국보관에 들어갔다. 여기엔 저 유명한 목조 아수라상이 있단 말이다 *.* 으흐흐. 아수라상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수라상 머리 부분. 8세기 가마쿠라 시대의 목조 조각으로, 팔부중 조각 세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하다. 투박해 보이면서도 힘이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드는 조각품
수업 때 슬라이드가 뜨자마자 "야 저거 싸이 닮지 않았냐"는 소란을 일으켰던 불두 ^^;; 8세기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하게 세공한 등롱, 위의 아수라상을 포함하여 8세기 가마쿠라 시대 목조로 유명한 팔부중상 등이 정말 볼만했다. 교토 국립박물관보다 훨씬 만족스러웠을 정도니까 뭐어.
아무튼 혼자 그렇게 돌아보고 다시 J양과 합류. 도다이지를 찾다가 문득 뭔가 빠뜨린 게 있음을 깨닫고 되돌아가서 고후쿠지 근처에 있는 사루사와 노이께 연못으로 향했다. 그렇게 탁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맑은 것도 아닌 녹색 연못은 바람없는 날이면 고후쿠지의 오중탑 꼭대기가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에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게 나라 8경의 하나라던가. 오후에 도다이지에서 돌아오다가 다시 들렀을 때 끝내 그 모습을 보기는 봤지만 대체 왜 8경에 꼽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아무튼 어슬렁어슬렁 한가로이 사슴들이 거니는 잔디밭을 지나, 나라 국립 박물관 옆을 지나쳐서 도다이지로.
도다이지에 대한 감상: 크다!
정말 크다. 히가시 혼간지 본당이 목조건물로 최대라지만 그건 길이 얘기고, 높이를 생각하면 이쪽이 더 크다.
도다이지(東大寺)는 756년 쇼무 천황이 처음 세운 후 1180년, 1567년 두 번의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1692년에 재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라는 대웅전과 세계 최대 청동불상이라는 대불, 두 가지로 유명한데, 그나마 이 대웅전도 재건하면서 원래 크기의 3분의 2로 줄어들었다니 원래는 대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거짓말인 듯 싶다. (혹은 과거에는 큰 걸 좋아했고 지금은 작은 걸 좋아한다거나? 하긴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서로 바뀐 걸지도;;) 아무튼 재건 과정에서 양식이 이리저리 섞여서 좀 혼란스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웅전 지붕 끄트머리가 살짝 들어올려진 모양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고색창연하고 한눈에 봐도 오래된 나무 기둥들도 마음에 들고.
내부는 별로 볼 게 없었다. 세계 최대의 청동불상이라는 대불은 그저 크기만 할 뿐이다. 멋이 없다고나 할까. 그보다는 주위 사면을 차지하고 있는 사천왕상 쪽이 조각으로서는 더 멋이 있다. 아무튼 뭐어, 높이 49미터에 폭이 5미터, 무게가 452톤...손바닥에만 사람이 16명이나 올라갈 수 있는 불상이라고 하니.
이 안에는 또 한가지 유명한 게 있다. 대불 오른편 뒤쪽에 있는 커다란 기둥에 뚫린 작은 구멍.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나 겨우 통과할 법한 작은 구멍인데, 이 안을 통과하면 1년치 불운을 막을 수 있다나 뭐라나. 해보고픈 마음도 좀 있었지만 쭈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 --;; 뭐, 용감한 어느 아저씨가 성공한 걸로 봐서 가능하다는 건 알겠지만 말이다. 내 움직임이 얼마나 웃긴지(...) 잘 아는 나로서는 이런 순간에 소심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씀.
어쨌거나 도다이지를 빠져나와 도리이를 지나서 니가쯔도(二月堂), 산가쯔도(三月堂)으로. 산가쯔도는 도다이지 창건 이전에 세워진 절의 자취라는데 뭐, 자세한 것은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입장료 낼 필요가 없다는 안내책자의 말을 수긍하며 통과, 니가쯔도의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야아, 니가쯔도의 난간 위는 정말 전망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삐걱이는 나무층계 옆에는 뭐가 있나 했더니 차를 마실 수 있는 휴게실. 하지만 버려진 것처럼 썰렁하고 사람이 없다. 그래도 급수기와 녹차가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나서는 터덜터덜, 허탕의 연속.
쇼소인(정창원)을 겉만이라도 보려고 했더니 휴관일이질 않나(울타리가 하도 높아서 안이 들여다보이지도 않더군! 분개), 나라국립박물관은 공식휴관일도 아닌데 놀질 않나...날이 하도 더워서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배도 고프지 않았다. 허탈한 심정으로 맛차시럽을 부은 얼음가루를 사먹고 (나쁘진 않았지만 너무 달았다), 쉬엄쉬엄 다시 연못까지 내려가니 4시.
이번에는 날이 좋아져서 사루사와노이께 연못에 5중탑 꼭대기가 비쳤으나 흠흠, 나라 8경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는 나라역 근처에 있다는 헌책방을 찾아 어슬렁어슬렁. 가다가 색색깔의 과자가 신기한 데다가 교토에서도 보지 못한 물건이 많길래 어느 과자 가게에 들어갔는데, 맛차인지 과자인지 알 수 없는 물건에 호기심을 느껴 집어들었다가 가게 안의 아주머니들과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하하...과자냐고 물어봤다가 영어가 통하질 않아서 아주머니들 다섯 분이 다 모여서 영어, 일어,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 호뜨 워떠가 뭔지 못알아들어서 고생을 좀 했지만 아무튼 과자는 아니고, 부숴서 뜨거운 물을 부어 저어 먹는 차라는 것까지는 알았다. 친구들과 함께 먹을까 하고 사왔는데, 알고보니 맛차의 쓴맛이 아니라 끔찍하게 단 맛이 나는 놈이었다;;
아무튼 아주머니들이나 우리나 꽤 재미있는 일화였던 것 같다. E양이나 G양과 함께 있을 때는 일어가 되니까 이런 소동이 없었지 ^^;
그러고 나서 날이 너무 더워서 J양이 녹초가 된 덕분에 시내 쪽에서 헌책방 한군데만 둘러보고 모스버거로 들어갔다. 다리도 쉴 겸,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쐴 겸...이런 걸로 저녁을 때운다는 게 과히 달갑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고유 햄버거집인 모스 버거는 꽤 맛있다는 소문이라서. 모스 스파이시 치즈 버거를 먹어보았는데, 소스가 매콤하고 주문하고 나서 바로 만들어주는 것, 세트에 샐러드가 같이 나오는 것 등은 마음에 들었다.
헌책방을 하나 더 둘러보고 긴테츠 나라역으로 돌아가니 어느덧 7시. 8시가 조금 넘어서 교토 도착. 오는 길에 교토역 11층에서 야경을 공짜로 볼 수 있다던 팁이 떠올라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고 하니, 야경을 보며 맥주 한 캔 들이키면 딱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날 야경이 일본에서 본 네번째 야경이지만, 이 날이 단연 최고였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콘서트를 하고 있었던 데다가, 정말 과감한 건축기법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공간 낭비......건물 연결로, 혹은 건물 사이를 텅 비워서 10여층에 이르는 층계를 밖으로 내놓고, 건물 사이에 있는 연결 통로에는 불을 밝혀놓았다. 사람들은 이 바깥 층계에 앉아서 저 밑에서 하는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꼭대기에 있는 스카이 가든은 사방에 거울을 설치해 놓아, 맞은편에 있는 교토 타워가 사방에 있는 것처럼 비쳐보인다. 크~~ J양과 우리의 선택을 자축하기 위해 맥주집을 찾아 돌아다녀 보았으나 마땅한 집이 없어서 다시 1층까지 내려가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기린 맥주 두 캔에 조개살 말린 것으로 추정되는 안주 한 봉지.
짧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너무나 기억에 남는 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