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할 때 내가 보내는 시간의 많은 부분은 '산책'이 차지한다.
물론 그럴싸하게 미화해서 산책이지, 대부분 길바닥을 헤매는 시간이다. 다들 주소만 알면 화면에 구글맵을 켜고 찾아다니는 이 시대에, 나는 여전히 종이 지도를 쥐고 두리번거리다가 목적지와 반대방향으로 걸어가기 일쑤에, 목적지와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골목길이 나타나면 그리로 어정어정 들어갔다가 여기가 어디인가 다시 고심한 후 또 엉뚱한 곳으로 걸어간다. 그 과정에서 원래 보고 싶었던 걸 보기도 하고 영 생각지 못한 장면에 마주치기도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나중에 돌아와서는 원래 이렇게 움직이려고 했다는 듯이 사진을 올린다. 어쩌겠나. 왜 늘 이런 짓을 반복하는지 스스로 정당화하긴 해야 하지 않겠나.
그날도 마찬가지. 분명히 아침에 숙소를 나섰을 때는 '고토마치에서 나가사키는 한 정거장 정도니 걸어가볼까' 했는데 조금 걷다보니 이런 건물이 눈에 띄지 않겠나. 문명당 - 나가사키 3대 카스텔라집(그렇다, 또 3대!) 중 하나로, 창업 후 114년 됐다는 분메이도의 본점이다. 데지마와 가깝다. 나는 또 반대방향으로 걸어간 것이다.
마치 일부러 찾아왔다는 듯이 문명당 카스텔라를 구경하고 나와서 겨우 나가사키역으로 돌아가 전차 1일 이용권을 사서 전차에 올랐다. 첫번째 목적지는 메가네바시(안경다리). 중간에 전차를 갈아타고 '니기와이바시' 역에 내려서 잠시 걸으면 나온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가득했다.
오, 진짜 안경 모양이네.
여기 돌담길에 숨어있는 하트 모양의 돌이 유명하다던데... 그런 건 굳이 찾아보지 않고 잠시 거닐다가 지나쳤다. 길을 건너서 잠시 걷다가 이쪽저쪽 기웃기웃.
메가네바시 앞 작은 카스텔라집 쇼칸도. 여기는 '소위 3대'로 꼽히진 않지만(물론 경우에 따라 다름), 매장이 단 하나 뿐이며, 왕가에 납품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역시 구경만 했다.
원래 메가네바시부터 찾은 건 친구가 추천한 집에서 나가사끼 짬뽕/사라우동을 먹을 생각에서였지만...
못찾았다.
그냥 대충 걸었다.
이런 곳도 지나고
저런 상가도 지나고
짬뽕집을 포기하고 지도를 보다가 큐슈 최초의 카페라는 '츠루짱'을 찾아보다보니 이미 소호쿠지(숭복사). 이 붉은 산문은 복건성 출신 중국인들이 세운 절의 특징.
배가 고팠던 나는 이쯤에서 포기하고 그냥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갔다. 중국과 일본 요리가 섞인 '싯포쿠 요리'를 하는 집으로, 원래는 많이 비싸지만 점심 한정 메뉴가 있다. 배고프고 짜증난 상태라 거하게 잘 먹은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 올리고.
잘 먹고 나온 후에 또 걸어서 시안바시 통과. 후쿠사야 본점이 나온다.
무려 4백년이나 영업했다는 카스텔라집 후쿠사야. 나가사키 카스텔라 세 군데를 꼽으면, 누가 꼽아도 이 집은 들어가는 것 같다. 들어가보고 과연 그럴 만 하다는 인상을 받은 게, 메뉴가 가장 단순하고 포장도 가장 단순하다. 자신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카스텔라는 하나도 사먹지 않았다. 실은, 특별히 카스텔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뭔가 했더니 경찰서였다!
*
여기서 조금만 더 걸으면 차이나타운이지만, 피로하여 오전 일정을 종료하고 잠시 숙소에 돌아가서 휴식.
오후에는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을 보고, 데지마 워프에 들렀다가 야경을 보러 나가사키 역으로.
데지마는 괜히 들어갔다 싶었고, 데지마 워프는 생각보다 작다.
길 끝에 나가사키현 미술관이 있다. 건물도 훌륭하지만 내부 전시도 잘 되어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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